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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과 이지연 - 여자들이 원하는 로맨스의 모든 것
안은영 지음 / P당(피당)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27살의 이지연과 34살의 이지연. 그곳에는 34살의 이름이 똑같은 나까지 세 명의 삶이 있었다. 30대의 이지연이 20대 때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쓴 글인 줄 알았는데 이름만 같은 두 여자의 다른 삶, 그들이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와 이름이 같음에도 "지연"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이름이 그저 낯설지 않게 다가올 뿐, 거리에서 나와 똑같은 이름이 불리워진 것처럼 무심코 돌아보게 되지는 않았다. 그녀들의 삶은 평범한 나의 삶과 너무나 달랐고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했으니까.
학창시절 이름이 같은 친구와 한 반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그 땐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그 아이가 반 아이들의 시선을 받는 것에 질투가 났었을까. 그보다는 아마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이름을 쓰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왠지 내가 가진 무언가를 빼앗기는 느낌? 그랬을 것이다. 27살 이지연은 왜 34살 이지연을 그토록 싫어했을까.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느낌도 없었는데 말이다. 34살 이지연은 사랑때문에 울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는 27살 이지연을 좋아했는데 말이다. 인생의 기득권을 가진자의 당당함이 부러워 시기심을 가진 것도 아니다. 20대에 사랑에 울고 몸부림 쳤던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며 내게는 '일'이 '사랑'보다는 쉽다는 결론을 내린 34살의 이지연의 모습이 너무도 냉정해 보였으리라. 아파도 아닌 척, 슬퍼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복하지도 않은데 행복한 척 하는 모습이 싫었을 것이다.
두 이지연에게 사랑은 쉽게 오고 쉽게 가는 것 같다. 물론 현실에 뿌리내리고 사는 우리들에게도 그렇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사랑이 아닌가 했는데 어느새 그 사랑에 빠져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니까. 그러나 하룻밤의 사랑이라도 그녀들에게는 '사랑'이라는 느낌을 주는 이가 있어 힘든 시기를 잘 버틸 수 있게 해준다. 27살 이지연의 오래된 사랑이 깨어지고 제이와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을 보며 '사랑'이 무엇인가 의문을 가지기 보다 너무나 통속적인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가지 않는 나에게 도리어 의문을 던지게 된다. "왜 이렇게 그녀들의 사랑이 가벼워 보이는 거지?"
사랑, 일 그 무엇도 놓치지 않는 34살의 이지연이 부럽다. 이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는 27살 이지연의 미래 또한 부럽다. 그러나 역시 이 두 사람의 상황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다고 나를 위로하며 27살과 34살의 차이는 7살 밖에 나지 않지만 20대와 30대라는 엄청난 차이, 인생의 고비를 한번 더 넘겼다는 여유로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역시 7살의 차이로 두 여자의 삶을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좀 더 살아본 뒤에 다시 이야기 해 보는 것이 좋겠다.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