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라는 말, 참 가슴 떨리게 한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 옮겨 가는 이 책의 전개방식은 이전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과 다르게 다가와 낯설긴 하지만 과거의 시간으로 이야기가 옮겨감에 따라 하나와 그녀의 양아버지 준고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2008년 6월 현재 결혼을 앞둔 하나가 양아버지 준고의 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이는데 무언가 사연이 있는 두 부녀를 보면 무사히 결혼을 마칠 수 있을지 위태위태하다. 결혼식을 위해 요시로의 요청으로 준고가 섬씽 올드로 가져온 낡은 카메라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음침하고 은밀한 사건이 하나와 준고를 이어 주는 것 같은데 한눈에 보이게도 남녀의 사랑이 느껴져 이 사랑이 그리 아름답지 않아 보인다. 준고와 하나가 살고 있는 벽장 안에 무언가가 있다. 2005년 11월, 요시로는 그녀의 집 안에서 나는 뭔가가 썩어가는 듯한 이 냄새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오래된 집에서 맡을 수 있는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린다. 거기다 하나가 준고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를 보노라면 대체 요시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어진다. 책을 읽는 내가 보기에도 뭔가 야릇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하긴 스물 일곱살에 초등학교 4학년인 하나를 딸로 맡았으니 이것부터 이상해서 다른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혼자 사는 곳에 딸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리 애정이 있다 해도 썩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가족들을 모두 잃고 홀로 된 하나를 선뜻 맡겠다고 나서는 이가 준고뿐인 것도 아니었는데 이 두 사람을 누구도 갈라놓지 못하게 무언가 단단한 것이 연결되어 있어 부녀관계로 살아가는 것은 운명으로 여겨지긴 한다. 준고가 과거 하나의 부모님에게 잠시 의탁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예측해 볼 수 있어 하나와 준고의 관계가 누가 떼어놓는다고 떼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란 것을 알수 있다. 나는 이 사랑에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 하나인 줄 알았다. 가족들을 잃고 새로운 가족이 생긴 그녀에게 준고는 결코 놓쳐서는 안될 사람이었고 '사랑'만이 그 가족을 이루어 사는데 필요한 조건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과거로 갈수록 부모에 의해 삐뚤어진 사랑을 하게 된 준고의 집착을 보면서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양아버지와 딸로 만나게 된 지금이 아닌 훨씬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닿는 잘못된 만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뼈가 되어도 준고와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이 변해 훗날 결혼하여 준고를 벗어나게 될 것이라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현재에서 과거로 시선이 옮겨지게 되면 독자들은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에 더 빠져들게 된다. 지금도 과거에 매달려 살아 가고 있을 하나는 자신과 준고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지켜온 '사랑'에 여전히 확신을 가지고 있을까. 혹자는 이미 결혼을 했으므로 그 사랑에 손을 놔 버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언제든 그녀가 준고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할 것인가. 누구도 두 사람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혼이 이어진 두 사람의 위험한 사랑을 나는 선뜻 밀어낼 수가 없다. 벽장속에서 나던 부패하던 냄새가 코 끝을 스쳐가는 그런 암울한 사랑이지만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하나와 준고 사이에 있는 요시로가 전혀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나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다가가게 되는 것이 '사랑' 아닌가. 요시로와 하나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을 듣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런 가슴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사랑은 싫다. 타인의 사랑 또한 행복한 결말을 맞길 바라는 마음,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