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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고향사진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학창시절 학교 밑에 있던 사진관이 떠오른다. 허름하긴 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망설여지지 않았던 편안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사진관이 사라져 나의 기억속에서나 존재하는 추억의 한 장소가 되어 버렸다. 늘 지나다니던 그 길에 이젠 나의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지만 지나 온 내 청춘시절을 누가 뚝 잘라 먹기라도 한 듯 마음이 섭섭해진다.
책 표지에 등장하는 '고향사진관', '양지이발소', '숙다방' 등은 이제는 드라마 세트장에서나 볼 수 있다. 옛 건물을 재현한 건물 앞에 서서 웃으며 사진을 찍고 예전에 우리들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나, 생각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곳, 그런 장소로 주목받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고향사진관'은 아버지가 하시던 사진관을 지키며 친구들이 가끔 들르며 안부를 주고 받는 사랑방 역할을 해 실체가 있는 존재로 자리를 지킨다. 대를 이어서 일을 이어받는 것이 아닌 쓰러진 아버지가 깨어나길 바라며 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을 그대로 둔 채 아들 용준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결 같은 마음으로 '고향사진관'을 지키게 된다.
저자가 친구 용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목소리도 간간이 넣어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글을 구성해서 그런지 용준이의 삶이 더 구구절절하게 다가온다. 용준이가 결혼을 한 후 큰 딸 혜주가 어른이 될 때까지 아버지는 그렇게 눈을 감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십칠 년이 넘게, 자신의 인생을 접어둔 채 아버지를 돌보아 온 용준,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보며 효자라며 대단하다고 쉽게 말들 하지만 "한 삼사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세월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며 그 때 먹은 마음이 죄송스러워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하는 용준이를 보니 나의 가슴도 아파온다.
용준이 놓아 버린 청춘, 아름답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일까,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의 그의 인생에 기어이 눈물이 터져 버렸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도 될텐데.......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그가 하고 싶은 일이란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니, 물론 이것이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던 용준이 놓아 버린 많은 것들이 생각나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부옇게 흐려진 눈길속에 기어이 목놓아 울고 있는 용준의 어머니가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책의 중반까지 읽을 때만해도 이야기가 툭툭 끊어지는 느낌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시던 '고향사진관'을 맡고 나서는 용준이의 행동에 마음 또한 가지 않았다. 안정된 미래가 있어 그가 포기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를 제대한 용준이 자신이 맞게 된 상황에 답답해하며 모든 짐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모습은 어딘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용준이가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간 긴 세월을 책에 담아내려 했기에 이야기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집안에 병자가 있으면 암울하고 우울하기 마련인 삶을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툭 뱉어내지 않으면 사는 것조차 힘에 겨웠을 용준을 생각하니 이제야 내가 받은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병상에 누워 지낸 아버지는 그 긴 세월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용준의 삶이 더이상 힘들어지지 않도록 먼 곳에 사셔서도 돌봐주셨다면 좋았을텐데, 그의 인생이 나의 가슴 속에 박혀 슬픔이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