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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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내용을 보고 선택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표지와 제목을 보고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책을 보자마자 그 때 나의 마음이 외롭거나 쓸쓸했던 모양인지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를 장식하는 남자의 모습 또한 그냥 외면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 내용과 관련있어 보이지 않는 제목을 들여다 보면서 마케팅의 전략(?)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고 넘어가자면 저자 김연수의 책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모두 어우러진 멋진 책으로 여겨진다. 허나 내용이 1991년의 어수선하던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몇 권의 장편소설을 읽는 듯 긴 호흡을 필요로 해 책장을 넘기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1995년에 대학을 입학한 나는 그 몇 년전인 1990년초의 격렬했던 정치적 상황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아 책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책에 등장하는 화자 '나'가 할아버지의 입체 누드 사진을 본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일본군에 학병으로 징집되어 남양군도까지 갔던 할아버지의 손에 어떻게 입체 누드 사진이 있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들려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책장까지 갔으나 내가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또한 글을 쓰는 작가라면 1991년 '5월 투쟁' 등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에 대해 꼭 한번은 조명해 보고 싶을 것인데 우리 문학이 일본문학보다 어둡게 느껴져 손을 뻗기가 저어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우리네 역사요, 이야기이지만 너도 나도 이 시절을 이야기 하고자 하니 그 시절을 몸소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도 늘 접하는 그 시절의 끔찍함에 치를 떨기도 하고 우울한 기분에 전염되어 헤어나오는게 쉽지 않다. 아마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내용이 이럴 줄 알았다면 나는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화자 '나'가 방북학생 예비대표 자격으로 베를린으로 가는 것은 운명인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사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강시우와 헬무트 베르크, '나'의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입체 누드 사진과 관련된 사람을 만나기까지 모두가 얽힌 관계속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길만 따라가는 것도 숨이 차서 쓰러질 지경이 된다. 강시우와 헬무트 베르크는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인물로써 살아가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이어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숨가쁘게 전개되고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또 다른 큰 이야기를 만든다. 그 자체로도 역사인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그 진실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개인의 기억속에서 뒤죽박죽된 사건들이 화자 '나'에 의해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탄생하기까지 '나' 또한 굴곡 많은 삶을 살아간다. 베를린에서 방북학생 예비대표로써 지내는 동안의 불안감, 강시우 때문에 한국에 가는게 어렵게 되는 상황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일 때는 작은 존재였던 그들이 저자에 의해 한 자리에 모이니 거대한 산으로 다가와 그 끝을 알 수 없게 된다. 퍼즐이 맞춰지 듯 기묘하게 얽힌 이들의 관계가 왜 베를린에 가서야 모두 알 수 있게 되는지 참으로 어렵다. 다채로운 파노라마로 엮어 나갔다는 이 책 덕분에 1991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마음이 더 쓸쓸해지지만 우리네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나도 한 가지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겨 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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