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 슬픔이 차오른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라니,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통속적인 말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그 참담한 심정이 들어 있는 것 같아 행복한 결말을 원하는 나는 책과 마음의 거리부터 둬 버린다. 이렇게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독자들에게 책속의 이야기가 이별을 담고 있음을 미리 알려준다. 또한 책속에 등장하는 희정의 독백으로 인해, 과거형으로 '경진'을 말하는 글들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희정의 독백을 보고 있으니 이 글이 어디서 이어진 것인가, 답답해지지만 그보다 그녀의 말에 이별이 보여 긴장감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경진은 분명 이별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경진과 그녀 사이에 끼여든 또 다른 여자 '초록고양이'(희정이가 붙여준 별명이다.)로 인해 먼저 경진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아니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왜 그랬을까. 분명 상처받을까 겁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사소한 변명일테지만 상대방에게 그 이유를 들어보고 나의 사랑을 접겠다는 말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시련 앞에 금세 등을 돌려버리는 그녀가 야속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별의 행동 중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희정, 그녀의 행동에 화가 난다. 그녀를 잡지 않은 경진이란 남자를 보면서 이 두 사람은 그동안 '사랑'을 하긴 한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운명'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사랑처럼 느껴진다. 경진의 입장에서 쓴 글도 함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정말 아쉽다. 두 여자의 글들로 인해 경진의 희정이에 대한 마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와 닮은 점은 없는지, 작은 우연도 운명이라 우기고 싶어진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이라 믿으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열정적인 사랑이 익숙함으로 바뀌면 이별을 예감하며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가슴 아파한다. 사랑에는 순서가 없는데 나는 이미 그 사랑을 시작하며 마음속에서 이별을 향해가는 순서를 밟고 있다. 그렇다고 사랑을 외면할 수 있을까.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외면하는 것은 바보같은 행동일 뿐이다.

 

희정이 파리로 떠나기 며칠 전에 만난 경진, 그와의 만남은 운명 같았다. 영원히 돌아올 것 같지 않은 파리에서 경진을 만나기 위해 돌아온 희정의 얼굴엔 사랑에 대한 설레임이 있었다. 오렌지 빛깔을 닮은 경진을 생각하며 파리에서 사진기에 온통 오렌지색을 담아온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다. 처음 서로에게 다가가는 사람들에겐 풋풋한 향기가 난다. 얼굴이 빛나 보이고 가슴엔 사랑뿐만 아니라 자신감으로 가득찬다. 세상이 온통 내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사랑'이다. 경진과 희정은 이 세상에 두 사람뿐인 듯 그렇게 빛이 났다. 이별이 오면 가슴이 아플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밀게 되는 사랑의 강력한 힘, 그것에 굴복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영혼은 또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에 손을 대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이지만 지나간 사랑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여야 시간이 지난 후에 모두 추억이 된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저 끝 너머에 있지 않을까, 그것이 힘든 삶을 살아내게 하는 힘을 준다. 서로가 바라보는 것만이 '사랑'인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나......사랑하나요? 라고 자꾸 확인해보게 되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만 나는 언제나 그 '사랑'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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