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책으로 코맥 매카시를 처음 만났다. 몇 권의 책을 읽지 않았지만 저자는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다루지 않고 인간 본성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들을 사건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 책 '핏빛 자오선'에서도 전직 신부 토빈, 토드빈, 판사 홀든, 글랜턴 등 이름있는 이들을 화자로 내세우지 않고 그저 이름 없는 한 어린 소년을 등장시켜 독자의 시선과 맞추어 피에 물든 미국 서부 국경지대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에 나의 몸까지도 전율하게 된다.

 

저자는 처음부터 친절하게 이 사람은 이렇게 만나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고, 이 사건은 이렇게 벌어진 것이다, 라고 설명해주지 않는다. 행간의 뜻을 파악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뜬금없이 길을 가다 소년이 만나게 되는 토드빈과 홀든 판사를 보며 갑자기 전개되는 이야기에 어리둥절 하게 된다. 나중에야 소년이 감옥에서 다시 만난 토드빈과 함께 글랜턴과 홀든 판사가 있는 무리에 합류하여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머리 가죽을 벗겨 주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사냥꾼이 되면서 그들과의 연결고리가 이어지지만 첫 만남에서는 도저히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사건들이 탁탁 끊어지는 느낌에 답답해지기도 한다.

 

소년은 화자일뿐 주인공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을 곳곳에 등장시켜 그들을 지켜보게 되지만 인디언의 습격을 받거나 위험에 처할 때 나는 소년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비정규군의 부대에 들어갔을 때 코만치들의 습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거나 글랜턴 무리들이 유마 인디언의 습격에 대부분이 학살당했을 때 다리에 화살을 맞고도 이 곳을 빠져 나오는 소년을 보며 "이 아이가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된다. "아아, 나의 무심함이여".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 가죽이 벗겨지는 것을 보며 내가 고통을 당하는 듯 끔찍함에 몸을 떨게 되어 이 작은 소년에게 계속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욕망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인가. 그 경계선이 있기는 한 것일까. 타인의 생명도 아무렇지 않게 빼앗는 것을 보며 과연 그들이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 선과 악을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인디언뿐만 아니라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누구라도 죽여서 머리 가죽을 벗기는 글랜턴 무리들을 보며 인간다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류까지 생각하는 거창한 것은 모르겠다. 그저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이 끔찍한 살육을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마을에서 만난 저능아를 데려가는 글랜턴, 그에게서 이 저능아를 돌봐주겠다는 동정심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왜 데려간 것일까. 홀든 판사가 물에 빠진 저능아를 살려주고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인간적인 모습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년의 말대로 식량으로 쓰기 위해 데리고 다녔다면 실날같이 이어지던 인간다움에 대한 경계선은 이제 그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홀든 판사가 왜 유마 인디언의 습격에 살아남은 토드빈과 전직 신부와 소년을 죽이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데 세월이 흘러 더이상 소년이 아닌 중년이 된 그를 만난 홀든 판사가 "인간 존재 자체가 전쟁과 죽음을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그들이 한 행동에 분명한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인디언 살육에 함께한 그들의 무리와 나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컴컴한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공포에 휩싸인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속에 사라진 수많은 이들, 붉게 물든 사막을 보며 그들의 고통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피에 물들고 폭력이 난무했던 미국 서부 국경지대에서 이유도 모른채 죽어간 많은 이들이 떠올라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