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스릴러 장르를 떠올릴 때면 '붉은 피'도 함께 떠오른다.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게 꼭 이것뿐이랴만은 이런 내 생각에 가장 근접했던 작품은 여러 단편들중에 류 삼님의 '싱크홀'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빼내어 죽인 후 영원히 자신의 곁에 두고자 하는 '성욱', 나는 그의 이런 살인 행위를 알고 나서도 집에 함께 기거하는 여인이 정말 친어머니인줄 알았다. 난 왜이리 어리석은 것일까. 성욱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한 혜원과 그녀의 아들 석현, 그러나 과연 성욱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을까. 혜원의 아들 석현은 아이라고 하기엔 어른 못지 않은 뛰어난 두뇌와 강한 정신력을 가졌다. 아마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이번에도 성욱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역시 이 끔찍한 일을 두 번 겪는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10편의 단편들이 수록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우리나라 작가들도 이렇게 추리/스릴러 장르의 책을 멋지게 쓸 수 있다는 것에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단편 이대환님의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의한 불가사리'는 밀실에서의 살인을 다루고 있는데 두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아쉬웠다. 그리고 단편 나혁진님의 '안녕, 나의 별'은 애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티렉스, 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친구 미미의 마음을 돌리게 하기 위해 직접 살인자 티렉스를 단죄하려는 지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건 너무 현실감이 없다. 죽은 티렉스의 애인 강 씨처럼 친구 미미도 그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대입시험을 앞두고 있는 미미의 마음을 잡게하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하지만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버지가 경찰이라고는 하지만 용의자 티렉스를 직접 만나 "죽이지 않았느냐?"며 강 씨가 살해된 장소에 있던 단서를 제시한다는 것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편 박지혁님의 '일곱 번째 정류장'은 죽은 여자의 시각으로 봤을 때 상대방이 끔찍한 스토커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정명섭님의 '불의 살인'은 요즘 텔레비전에서 하고 있는 드라마 "별순검"을 보는 듯 친숙하게 다가온다. 단편 최혁곤님의 '푸코의 일생'과 김재희님의 '오리엔트 히트'는 스파이, 첩보물을 보는 듯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강지영님의 '거짓말'은 읽고 나서도 가슴이 서늘해 마음이 편해지지가 않았다. 이렇듯 각각의 고유의 빛깔을 가진 단편들로 인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은 단편도 있었는데 그건 김유철님의 '암살'이었다. 우리 역사를 다루고 있어 쉽게 넘어가지 않는 내용이기도 했지만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10인의 단편들속에는 인생도 담겨 있을 것이다. 각 단편들이 너무 짧게 끝나버려 더 아쉬운데 이 단편들이 장편들로 탄생했을 때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생각해 보는 또 다른 즐거움도 있었다. 단편 '안녕, 나의 별'을 읽으며 미미와 지혜의 관계에 긴장하게 되어 나름대로 추측하면서 책장을 넘겼었는데 오히려 아무일 없이 마무리 되어 실망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열린 결말로 인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진 숙제는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을 줄 수 있겠지만 여러 갈래의 결말을 유추해 볼 수가 있어 분명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밀실 추리, 첩보 스릴러 등 다양한 소재를 우리들에게 보여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통해 우리 나라 작가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