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향수가 뭐길래.

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그 놈의 품위가 뭐길래. '머스크'란 향수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흔들린단 말인가. 69세의 엠므 씨는 오랜 세월 발정기 사향노루의 분비물에서 추출한 '머스크'를 써 왔는데 이 향수로인해 여자들에게 당당하게 다가가는 늘 멋진 남자로 인식해 왔었다. 그러나 천연 향수인 머스크를 제조한 회사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기업 이미지를 생각한 나머지 천연 머스크 향수와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게 될 줄이야. 그 때부터 엠므 씨의 삶은 지옥이 되어 버린다. 사실 사향노루의 분비물을 구하기 위해선 법적으로 문제도 많을뿐 아니라 동물학대로 보여 기업 이미지를 생각 안할 순 없겠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 이 천연 머스크를 구하기 위해 전직이었던 스파이 활동을 방불케 하는 그의 행동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론 웃음이 나오고 안쓰럽기도 하다.

 

'머스크'는 엠므 씨에겐 그저 그런 향수가 아니다. 엠므 씨의 정부 '이브'의 "이때까지 맡던 냄새와 다른데 좋다"는 한마디에 와르르 자존심은 물론 삶의 존재감마저 흔들리게 된다. 검버섯 핀 피부, 쭈글쭈글 접히는 뱃살을 바라보며 언제나 여자를 넘어오게 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닌 그저 늙어가는 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살아가는 의미까지 잃게 된다. 향수면 그냥 향수지, 뭘 그렇게 집착을 하는지, 사실 이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엠므 씨의 이런 증상은 외로움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자살을 한 후 여자를 만나도 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복수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가족을 만들지 못하고 정부 이브와 오랜 세월 함께 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 당당하게 보이려 애쓰지만 속마음은 얼마나 여리고 두려움이 많은 외로운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머스크를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다면 남아있는 머스크로 살아갈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하루 사용량을 줄여도 보지만 자신의 품위를 생각할 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향수의 양을 체크하는 것이 진절머리 날 정도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하나, 머스크에 영원히 갇히는 것이었던가. 그럼 이제 머스크속에서 엠므 씨는 평안을 찾았을까. 머스크로 견고히 쌓아 놓은 자신의 성이 이제는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때 얼마나 끔찍했을지 이해 못할바는 아니지만 여자들을 정복하는 것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은 엠므 씨, "다른 곳에 관심을 두었다면 인생이 즐겁지 않았을까" 물어보고 싶다.

 

자신의 성격대로 철저하게 주변을 관리한 엠므 씨, 그 철저함에 정이 다 떨어지지만 오히려 불쌍해서 비난도 못하겠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배려한 그의 모습에 향수를 향한 그의 욕망이 대체 무엇이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엠므 씨의 행동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책 "머스크", 웃음이 터져나왔으면 좋으련만 가슴만 갑갑해질뿐, 오히려 마음에는 슬픔이 차오르니, 내 마음은 누가 시원스레 뚫어준단 말인가. 나도 엠므 씨처럼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는 물건은 없는가 생각해 보아야겠다. 거기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다스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