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결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이름을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심히 부끄러운 일이라, 조금 만회해 보고자 "자기앞의 생"을 먼저 읽어보았다. "자기앞의 생"은 열네 살 소년 모모의 이야기로 전체적으로 잔잔한 느낌이라면 이 책은 각 단편들이 아주 강렬하게 다가온다. 짧은 단편들로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은데 매 단편들마다 끝을 보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끔찍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 뒤에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은데 끝나 버려 아쉽다고나 할까. 오히려 계속 이어졌다면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후덥지근한 더위, 도저히 견디지 못해 이 섬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참에 몰려오는 '폭퐁우', 파르톨 박사를 만나러 온 한 남자 '페슈'는 무엇때문에 이 곳에 온 것일까. 파르톨이 돌아오기전 그의 아내 엘렌을 겁탈하려다 멈춘 이유도 궁금하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폭풍우속으로 들어서는 페슈의 모습은 처연해 보였다. 엘렌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떠나는 페슈, 그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며 페슈의 병을 이야기 하는 남편의 말에 엘렌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일뿐인데 어쩌면 단편 [폭퐁우]속에서 엘렌이 그 뒤에 한 행동은 페슈를 동정하고 그와 함께 하지 못함에 가슴아파했을 것 같다. 아주 짧은 만남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각인된 이 단편으로 인해 엘렌과 페슈, 그리고 독자들까지 슬프게 만든다.

 

로맹 가리의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시대들은 예전에 군인이었던가, 지금 군인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 있든지 1941년, 1943년의 상황을 주로 다루고 있다. 로맹 가리는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두 번의 큰 전쟁을 겪으며 실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로젠 비행부대 대위로 참전한 경험도 있는 것을 보니 작가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사건들이 저자의 손에 의해 탄생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겠냐만은 왜 이 단편들중에 [마지막 숨결]을 책 제목으로 썼는지는 알듯도 하다.

 

살인청부업자에게 돈을 주고 살인의뢰를 하는 주인공 '나', "퍽버거 파라다이스"에서 만난 주근깨 아가씨가 '나'를 찾아왔을 때 아마 그 뒤에 살인청부업자 '무라도프'가 뒤따르고 있었을텐데 그녀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이것도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데 반전이 있을수도 있고 여러가지 상황을 만들어 볼 수 있어 단편이 끝나고 나서도 역시나 긴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은 단편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사랑스러운 여인]를 선택하고 싶다. 이 책을 대표하는 [마지막 숨결]을 선택하지 않고 왜 [사랑스러운 여인]을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남편을 찾아온 철없는 여인이지만 그 남편을 살리기 위해 목숨도 내놓는 그녀를 보며 철없다며 어찌 남편이 일도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린 나를 아무말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그녀의 '사랑'때문이었다. 드라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런 장르의 작위적인 이야기들 보다 더 가슴아프고 슬프게 다가오는 단편이기에 나의 삶과 인생을 끼워넣을 틈하나 보이지 않아 속상했지만 오히려 하루종일 작품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로맹 가리의 마지막 유작이라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책 "마지막 숨결"은 미발표, 미완성된 작품들을 읽으며 완성된 그의 글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것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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