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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다구치-시라토리가 나오지 않는 가이도 다케루의 책을 읽으니 음식에 간이 되지 않은듯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에서는 아이를 직접 낳은 여자를 이 아이의 어머니로 인정해야 하는지, 수정란의 주인을 부모로 인정해야 하는지 법률과 사회적 규범과는 다른 문제로 독자들에게 의문을 제시하여 이런 아쉬움을 전면 봉쇄하고 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기요카와와 의견을 같이 하는데 아무리 자신의 유전인자를 갖지 않은 아이라 하더라도 10개월을 뱃속에 품고 있다면 모성애가 생기기 마련이라 이 아이에 대한 애착도 생길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대리모라 할지라도 이 아이를 자신이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인공수정 전문가인 리에가 자신의 수정란을 야마자키 미도리에게 제공하여 아이를 낳게 한 것은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아이와 야마자키 미도리, 그리고 리에의 관계는 어찌 되는 것인지가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니까.
리에가 대학에서 발생학을 강의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학창시절 배웠던 것들이라 낯설게 다가오진 않지만 역시나 용어들이 어려워 몰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이 발생학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산과와 소아과를 포함한 지역의료의 붕괴에 처해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병원의료의 붕괴'에 대해서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위험수준에 이르렀다고 알고 있지만 아직 그 위험도를 피부로 느낄 수 없어 리에가 처한 상황은 물론 왜 그녀가 도쿄 데이카대학의 강사 자리를 박차고 나왔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마리아 불임 클리닉'에 찾아오는 다섯 명의 산모들, 이들 산모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 이 곳은 폐쇄될 것이다. 산모중에 대리모가 있다는 제보에 의심을 받는 리에, 기요카와는 산모들중 55세로 쌍둥이를 임신한 야마자키 미도리에게 그 심중을 둔다. 문제는 누가 대리모에 대한 제보를 했냐는 것인데 솔직히 누군지 알게 되면 의외의 인물임에 놀라게 되지만(나는 '리에' 자신이 그 제보를 하지 않았나 추측했었다.) 그 제보자가 리에에게 갖는 감정은 우습게도 인정을 하기 쉽지 않다. 왜 리에 가장 가까이에서 손발이 되어 도와주는 사람이 제보를 한 것일까. 이유는 리에가 대리모에 대한 일을 비밀에 부치고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건데 리에의 전문분야인데 제보자는 왜 이런 이유로 리에를 곤란하게 하는 것인지 그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리모의 존재를 법률적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나는 리에에게 도저히 동조할 수 없다. 윤리적으로 지탄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공수정을 할 때 두 쌍 이상의 수정란을 착상시키는 것이 관례라 해도 산모 아라키 모르게 그들 부부의 수정란이 아닌 다른이들의 수정란을 착상시키는 행위는 윤리의식이 분명 결여되었다고 보여진다. 어느 수정란이 살아남느냐는 확율의 문제이겠지만 아라키 부부가 바라는 것은 자기 배로 낳은 자기네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누구의 아이든 아이만 낳게 하면 된다는 식의 의견을 내보이는 리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대리모 출산에 관련 되었을지도 모르는 리에의 전횡을 파헤치는 것이 아닌 이렇게 윤리의 문제로 논점이 바뀌어 버리니 리에를 바라보는 것이 거북하고 불편해진다. 이런 생각을 가진 그녀를 정녕 그대로 두고 봐야만 하는가. 기요카와는 리에와의 싸움을 끝내지 않는다 하였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아이를 갖는 것이 힘든 산모들에게 너무나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리에, 하지만 도의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각성이 필요한 것 같다. 그녀에게 제대로 된 생각을 기요카와가 부디 각인시켜주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