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랑이야기인데 왜 몰입이 되지 않는지.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며칠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을 쭉 읽었더니 '더 좀비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 말고는 법학부에 다니는 학생들과 법학부의 다니무라 교수가 너무 자주 등장해 식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연애소설"의 단편 세편 모두 다니무라 교수가 등장하니 말 다했다.

 

단편 '연애소설'에서는 법학부에 다니는, 그것도 다니무라 교수의 강의를 듣는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 한 사람의 기억속에 묻혀진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연을 맺으면 소중한 사람들이 늘 죽어 자신의 곁을 떠나는지라 자신을 '사신'이라 부른다고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단편 '연애소설'은 시작되고 있었다. 늘 경계선 너머의 세상에 대해 무심했던 그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그녀를 품안에 안은 후 사랑을 느껴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느끼지만 손을 뻗어 다가선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여자를 안아주다니, 너무 멋진 장면이다. 하지만 계단에서 넘어지는 설정은 뒤에 나오는 단편 '꽃'에서도 계단은 아니지만 자주 넘어지는 게이코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도리고에의 이야기를 통해 또 등장하기에 너무 비슷한 이야기라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째서 거의 법학부 학생들인가, 왜 또 다니무라 교수가 등장하는가. 저자가 살아온 울타리속에서 글이 쓰여져서 그렇겠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설정은 나를 너무 지루하게 만든다. 단편 '영원의 환'은 솔직히 'SPEED'의 후속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자살한 아야코를 좋아한, 삶이 얼마남지 않은 '그'가 친구 K에게 다니무라를 죽여달라는 요청을 해 결국 다니무라는 죽음을 맞는다. 뭐 다니무라의 최후를 이런식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은 좋다. 당연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되니까. 하지만 내가 읽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들은 비슷비슷한 소재와 설정,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로 인해 역시 식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단편 '꽃'만이 나의 가슴에 오래 머무른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내를 기억조차 못하던 도리고에가 게이코가 남긴 유품을 가지러 가면서 그녀와의 추억을 다시 생각해 내는 내용이 너무나 아련하고 슬펐으니까. 서로가 떨어져 비록 다른 장소에서 살았지만 늘 잊지 않았던 두 사람. 하지만 한쪽이 죽었을때에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연애소설' 책 제목만으로는 가네시로 가즈키가 드디어 로맨스 소설을 썼나보다 기대하게 하지만 역시나 먼저 만났던 소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조금 실망스럽다. 유쾌했던 '더 좀비스'와의 만남이 강한 여운을 남겼음일까. 슬픈 사랑 이야기지만 오롯이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이제 저자는 "영화처럼"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자신이 살아온 울타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