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 "토요일"만 보면 그저 평범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운 하루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2003년 2월 15일 토요일, 신경외과 의사 헨리 퍼론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악몽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름답고 유능한 변호사 아내, 아들과 딸.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그에게 대낮에 벌어진 접촉사고는 살아가면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일이 끔찍한 일이 될 줄이야.

 

딸이 집으로 오는 날, 헨리는 직접 장을 보고 딸을 기다리는 행복한 기분에 젖는다. 동료 의사 제이와 스쿼시 시합을 하고 여느 토요일과 다름없이 보내고 있는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들은 그 뒤에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오히려 긴장감을 느끼게 해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왜 하필 건달들의 차와 접촉사고가 났을까,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였지만 헨리는 왜 박스터의 '헌팅턴병'에 대해 언급하여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까. 아마도 그 사건을 겪고 헨리는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자신에게 던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당시의 위험은 피할 수 있었지만 저녁에 퇴근하는 아내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집으로 쳐들어 온 건달들을 봤을 때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

 

박스터는 딸 데이지가 적은 '시'에 돌연 관심을 보이고 애초에 계획을 세우고 헨리의 집에 쳐들어온 목적은 잊어버린 채 다른 건 원하지 않고 데이지의 책만을 고집한다. 갑작스러운 변화, 그가 왜 이러는지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고 박스터와 함께 왔던 동료들이 조용히 이 집을 빠져나가 가족들이 더이상 큰 위험에 노출되지 않아 다행이다. 아내를 칼로 위협해 딸이 옷을 벗게 만들어 수치심에 치를 떨게 만들지만 더이상의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박스터가 헨리와 테오에 의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다쳐 헨리에게 수술을 받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래, 헨리는 분명 박스터를 수술할 때 사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가족들을 위협한 그를 살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는 의사로서의 사명감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사건의 피해자로써 그를 용서한다. 이미 박스터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기에 그대로 두는 것이 박스터에게는 큰 형벌임을 아는 것이다. 헨리는 용서라고 하지만 이미 박스터는 그동안 잘못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대해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었던 셈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벼운 접촉사고라 이렇게 위험한 사건으로 번질 것이라 누구든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따분하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원망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평범한 나의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될테니까. 나의 인생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며 헨리가 겪은 일이 그다지 먼 곳의 일로 여겨지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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