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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효종이 조선통신사로 사행길에 오르는 남용익 종사관에게 밀서를 전한다. "호시나와 노부쓰나 중 한사람에게 반드시 건네주어야 한다. 누가 우리와 성심으로 교린을 다할 사람인지 반드시 파악하여 두 사람중 하나와 소통해야한다. 그럴 이유가 있느니......"
조선을 전쟁에서 지켜내기 위해 결단코 정안국의 오현명처럼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효종, 밀서를 받게 되는 남용익 종사관을 잘못 선택한게 아닐까. 솔직한 것이 남용익 종사관의 장점이자 단점이겠지만 오히려 왕의 밀서를 전하는 역할로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선대 쇼군의 이복동생인 기요모리를 죽인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간사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노부쓰나에게 밀서에 대한 이야기를 흘릴뻔 햇으니, 물론 책에서야 역관 명준이 막았다고 하지만 심중에 있는 말은 다했다고 생각되니 조선의 국운을 어찌 입이 가벼운 남용익 종사관에게 둘 수 있을까.
기요모리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는 남용익의 존재는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한다. 이에 운신하기 힘든 남용익을 대신하여 명준이 사건을 파헤치게 되고 조선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호시나와는 달리 노부쓰나는 조선을 위하는 척 간사하게 남용익을 돕는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남용익이야 이런 노부쓰나에게 마음이 기울지만 명준은 오히려 그를 믿지 못하고 이 같은 사태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일단 "기요모리가 죽었는가?" 의심을 하게 된다. 목이 없어진 시신을 두고 기요모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거기다 승려 도겐까지 죽게 되니 이제 이 사건은 남용익의 죄를 가리는 것이 아닌 호시나와 노부쓰나, 무라사키가 꾸미는 막부 권력을 노리는 세력싸움으로 여기에 조선의 국운까지 걸린 중대한 사건으로 떠오르게 된다.
애초에 기요모리가 남용익을 다이도쿠지로 데려가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따로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에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따라나서는 남용익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들과 함께 나서는 진사이가 들려주는 '가구야히메' 이야기와 마쓰오 바쇼에 대한 것들은 후에 명준에게 단서로 제공되지만 사건이 발단이 된 이 네 사람이 겪는 다이도쿠지에서의 일은 당위성이 떨어지기에 책을 읽는 동안 명준과 다나카가 사건을 풀어나가긴 하지만 결론으로 사건들이 모이기 보다는 계속 퍼져나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쇼군과 꼭 닮은 마쓰오 바쇼를 가게무샤로 훈련시켰다는 내용은 호시나와 노부쓰나가 막부 권력을 쥐기 위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 된다. 어린 쇼군을 위협하고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것 또한 밝히는게 이 사건의 핵심이겠지만 처음 효종의 밀서를 전해주기 위해 남용익이 조선통신사의 사행길에 오른 포부, 결심 등이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분이 낮은 역관 명준은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숙명이 있었고 어린 시절의 첫 사랑 도모에를 만나지만 그녀 또한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기에 마음이 애틋해진다.
도모에가 "마쓰오 바쇼가 기요모리와 자신의 아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독자인 나는 사건의 중심에서 튕겨져 나와 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나름대로 고민하며 사건에 대해 다가갔다고 생각했지만 사건은 점점 뻗어나가기만 할 뿐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을 것 처럼 보였다. 오로지 명준만이 이 사건의 핵심에 다가갔을 뿐이다. 물론 명준과 함께 사건을 파헤친 다나카의 존재가 뒤에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독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낯설게 다가오는 막부의 권력싸움, 이 사건으로 조선이 또 전쟁에 휩싸일까 두려워 명준이 이 사건을 철저하게 파헤치게 되지만 글쎄, 과연 이것을 조선을 지키기 위한 명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교토의 일본 막부에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조선의 역관 명준이 해결한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종사관 남용익의 능력이야 이미 "왕의 밀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니 그를 제외하고 조선을 지키고자 애쓴 효종의 마음도 느껴져 나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꽉 막힌 듯 터져나오질 않는다. 일본의 역사가 낯설게 다가와서 책에 몰입하는 것이 쉽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명준으로 인해 사건이 잘 해결되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