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아,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주입식 교육 덕분으로 "왕오천축국전"이라는 말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나 무엇을 담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었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많은 것을 알아가길 원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내 솔직한 감정은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김탁환님의 책 "혜초"는 혜초의 현재 상황과 과거 천축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기록한 글로 크게 두 부분으로 전개된다. 마지막쯤에 이르면 이 부분이 만나는 지점이 생기는데 그 때쯤 되면 모든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대유사로 떠난 고선지와 그의 부하 열 두명, 이들이 대유사로 떠난 것은 "알라의 군대가 우기를 급습했다"는 두루마리 편지 한 축 때문이었다. 3만 대군을 움직이기 전에 사실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대유사에서 만난 검은 모래 폭풍으로 병사들은 사라지고 고선지는 이 곳에 홀로 남겨진다. 고선지는 일가족의 묘 아래 있는 혜초를 발견하며 병사들을 잃고 검은 모래 폭풍을 만난 사실을 증명 해 줄 수 있는 혜초를 데리고 다시 돌아가게 된다. 

 

혜초는 천축을 여행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다. 자신이 늘 가지고 다니는 걸낭속의 양피지를 읽으면 기억이 돌아올까. 이 걸낭을 찾기 위한 모험, 이 걸낭으로 인해 이어진 장사꾼 란수와의 끝이 없는 악연, 무희 오름과 내림, 그리고 고선지와의 인연, 이 방대한 역사속에 이들이 함께 한다. 혜초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고 해도 란수의 끝이 없는 욕심때문에 목숨마저 위태로웠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란수와 함께 하였기에 매일 한장씩 읽어주었던 양피지들로 인해 목숨이 연장되었지만 이미 혜초와 란수가 대유사의 검은 모래 폭풍을 맞기 전에 양피지속 이야기-무희 내림, 야곱, 란수 혜초가 함께 했던 그 전의 기록까지-를 혜초가 란수에게 다 읽어주었지 않았는가. 장사를 하며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혜초처럼 글로 기록하지 못하는 란수는 혜초의 모든 기록이 필요했다. 향찰로 기록한 글을 란수는 읽을 수 없었기에 하루에 한장씩 외우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이 기록에 대한 란수의 욕심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이 모르는 혜초의 여행기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굳이 자신이 등장하는 기록까지 들어야 했을까.

 

쌍둥이 자매 오름과 내림, 이들의 이름을 지어준 혜초와의 깊은 인연, 오름과 고선지와의 인연. 언뜻 보면 같은 사람을 두고 혜초와 고선지가 마음을 두는 것 같지만 이들의 마음이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고선지라는 인물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세상에 드러내 놓기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검은 모래 폭풍을 만나 돌림병이 든 고선지를 굳이 혜초와 만나야 한다며 고선지를 데리고 혜초를 찾아나서는 오름. 여기에서 나는 검은 모래 폭풍을 만난 혜초가 이 병에 걸리지 않았으니 이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오름의 말이 이상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돌림병에 걸렸는지조차 모르는 혜초가 왜 자신은 그 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돈황까지 고선지와 혜초를 함께 데려가기 위한 술책이지만 잘 짜여져 있던 소설의 내용이 오름이라는 여인으로 인해 어긋나고 오름으로 인해 맺어진 인연의 개연성마저 사라진다. 개인적인 복수때문도 아니었다. 공중소리를 낼 수 있는 오름의 존재는 이 때부터 실체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느껴진다. 그 전에도 안개에 싸인 신비로운 존재였지만 이제는 그 실체조차 가늠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모든 사건의 중신에 있는 오름.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혜초와 오름의 싸움은 갑자기 스릴러 같은 느낌이 들면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왜 이런 형식의 글로 발전하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천축을 여행하며 온갖 일들을 겪었겠지만 내가 따라간 혜초의 발자취는 그저 고선지와 오름, 내림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는 여행이었기에 1200년 전 실크로드를 쉼 없이 걸었던 한 승려의 기록을 오롯이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야곱이 그려준 지도를 따라 야곱의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혜초와 란수 그리고 이 곳에 오게 되는 오름과 고선지. 모두 이 곳에 모여 듣는 진실은 이들이 여기에 모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말하지만 대체 이 장면이 꼭 필요했었는지, 책장을 넘길수록 모호하여 내가 생각한 혜초의 기록 '왕오천축국전'의 내용에 크게 벗어나는 것 같아 많이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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