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참호, 이 참호속에는 병사가 숨어 있다. 그들은 적이고 그들에겐 자신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어 같은 동포임에도 휴전선을 그어놓고 대치중인 우리나라, 이런 우리 민족의 상황 덕분에 마음까지 와 닿는 이 책에 대한 느낌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누가 이들을 '적'이라고 정해 놓았을까. 이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 먹은 '나'는 적을 없애기 위해 적의 참호속으로 들어간다. 물에 독을 타고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는 '나'가 괴물로 그려진 적의 전투 지침서를 보며 "나는 괴물이 아니야. 나는 인간이야"라고 부르짖지만 이 말들은 공허하게 참호속을 울릴 뿐이다. 지금도 세상에는 전쟁중인 곳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서로 '적'이라고 정해놓고 죽고 죽인다. 가까운 사람이 미워져 "넌 나의 편이 아냐, 적이야"라고 말하는게 이제는 두려워질 정도다. 다른 참호속에 있는 군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나'와 똑같은 모습일거라 짐작하게 된다. 피부색이 다르고 모습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내면에 있는 마음은 똑같을 테니까. 서로 눈치보며 불을 피워 음식을 먹고 물 한모금 먹는 것조차 두려워 하는 두 사람, 누구 한 사람 죽어나가도 이 전쟁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서로 적의 참호속에 들어가 있는 두 사람. '나'는 나무에 불을 지르거나 물에 독을 타지 않는다는 것을 알릴 수만 있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를 알릴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으리라. "이 순간부터 전쟁을 끝낸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나'는 기다린다. 적이 먼저 보내오기를 기대하며. 온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담은 병을 던지는 '나', 희망을 담은 병이지만 나는 이 그림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한다. 적은 이것이 아무 위해도 가하지 않는 그저 적이 남긴 메시지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까. 혹 폭탄이 아닐까 의심하며 처음엔 조심하겠지만 결국엔 그 병을 열어보겠지. 하지만 말이다. 이 두 사람이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고 해서 과연 이 전쟁이 끝이 날까. 나의 편이었던 사람들은 적과 내통했다 하여 나를 죽이려 들지 않을까. 세상에 이 두 사람만이 남아있었다면 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 가혹하다. 서로 던지는 유리병을 바라보며 세상도 이렇게 훤히 보이는 유리병처럼 투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로 총을 겨누는 적이지만 똑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을 보며 과연 누구를 위해 전쟁을 하고 적으로써 싸워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그저 가족들의 품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서로 죽이라고 명령한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책상에 앉아 작전을 짜고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을 죽이고 전쟁에 승리할 수 있을까 궁리하겠지. 전쟁 중에 군인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할테니까. 그래서 이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이 슬프게 다가온다. 나의 의지가 말살된 이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게 무엇일지, 두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테니까. 누군가가 원하는 '승리'를 모든 이들이 원하는건 아니다. 그저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전쟁 소모품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제발 모두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