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코네로가의 영원한 밤
플라비오 산티 지음, 주효숙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괴테의 마지막 나날에 대해 적혀 있는 "보스코네로가의 영원한 밤", 이 고백록을 통해 괴테는 광기의 문턱까지 갈 정도로 추락한 자신을 조금은 추스리고 세상을 떠났겠지만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란 말인가. 괴테는 '마지막 나날에 대한 고백록'을 남김으로써 보스코네로 가의 후손인 페데리고의 '인간 거울'의 역할을 잘 해내고 떠났다.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영원한 밤을 살고 있을 페데리고는 지금 더 없이 흡족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1787년 4월 6일 괴테는 유명한 제 샤베리아 선술집으로 향한다. 이 곳에서 그는 "가장 무시무시한 남작의 문장이 어느 건지"를 물었고 한 사람이 "어두운 숲...." 이라는 말을 하며 그에게 아주 끔찍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게 된다. 보스코네로가의 후손 아담과 페데리고, 아담은 그의 아버지 루시퍼를 죽인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담, 나는 정신병원에 갇힌 아담이 책 속에 등장하는 머리가 떨어진 살인사건들을 저지른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정신병원에서 사라진 시기와 사건들이 벌어진 시점이 잘 맞았으니까. 하지만 괴테가 광기의 문턱까지 갔다고 고백한 이야기는 이 모든 사건의 끔찍함을 덮어버릴 정도의 위력을 보여준다.

 

"삶은 피를 먹고 산다"는 문장은 가정교사 텔라모니오가 페데리고에게 늘 하는 말이었다. 이 뜻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찾아나선 페데리고, 그는 수면발작증으로 인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몽롱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늘 새롭게 느끼는 페데리고, 기억상실증을 겪는 그에겐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줄 '인간 거울'이 필요했다. 첫 번째 인간 거울 바르첼로나는 갑자기 사라진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 페데리고에게 여인으로 다가온 열 살의 소녀 네르베타가 머리가 떨어져 불에 그을려 죽었는지조차 괴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밝히지 않는다. 계속 궁금하게 만들어 한발 한발 다가오게 하여 목을 조이려는게 분명하다.  

 

계속 살인사건은 일어나고 이 일을 조사하는 경감 모이오는 토니오 시코네를 잡아들이고 사라진다. 토니오 시코네가 범인이든 아니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 사건의 범인은 흡혈귀라는 말이 간간이 나오게 된다. 흡혈귀,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겐 너무나 낯선 낱말이 아닌가. 이 일을 모두 흡혈귀가 한 짓이라고 떠넘겨 버리려는게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 괴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페데리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건에 대해서 들려주어 지루하게 만들지만 이 모든 것이 페데리고에 이르기 위해 그가 조금씩 늪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모든 사실을 들어버린 후였다.

 

괴테는 남작에게 초대받아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죽임을 당하지 않음에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은 그는 이 일이 기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한 것인가. 오로지 세상에 이 일을 알려야 할 의무를 가진 괴테는 "삶은 피를 먹고 산다'는 문장의 뜻을 알게 된 후 오히려 살아남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깨닫고 그 끔찍스러움에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이 책을 읽은 나도 싸늘하게 내 몸을 감싸오는 냉기에 나도 모르게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손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낄 정도이니 그가 처한 상황이 어떠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보스코네로가"의 비밀을 알고 싶은가. 그에게 손길을 뻗고 싶은가. 그러면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면 된다. 그러면 어느 새 내 발밑은 늪속으로 꺼져들어가고 있을 것이니 그때서야 도움을 청한 들 그 누구도 돕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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