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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프랑스에서 건너온 성마리아나 수녀가 세운 여학교, 정말 존재했을까. 명문가 딸들이 다니는 폐쇄적인 분위기, 연한 크림색 교복 차림으로 소녀들은 어떤 꿈들을 꿨을까. 이같은 분위기라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이 학교를 세운 성마리아나조차 신비스러운 존재니까. 난 책 제목을 언뜻 보고 "청소년을 위한 독서클럽"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이었다.
여자들만 있는 곳이라 성욕, 남성들에 대한 관심을 분출시킬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에도 또래 친구들에게 기념일이 되면 초콜렛을 한가득 받은 애들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저 성격이 좋아 인기가 많은 줄 알았는데 세월이 지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중성적인 외모의 그 아이들이 또래 소녀들에게 왕자님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성마리아나 학교에서는 해마다 왕자를 뽑는다. 이 학교의 독서클럽에서 왕자가 뽑히게 하기 위해 머리는 좋지만 못생긴 외모를 가진 아즈마가 키가 크고 멋진, 서민의 가정에서 살아온 냄새나는 베니코를 왕자로 변모시킨다. 대단하지 않은가. 분명 이것은 자신의 의지로 이미지를 만든 소극적인 정치의 한 형태로 여겨진다.
백년을 이어온 성마리아나 학교, 성마리아나가 이 학교를 설립하기전 프랑스에서 점을 봐주는 집시는 말했다. "백년이 지나면 타인들이 찾아올 거야. 남자들이야. 당신이 데려오는구먼" 집시의 이런 이상한 말들은 실제로 맞아 떨어지게 되고 그 의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다. 성마리아나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는 여학교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 같다. 무너져 가는 건물안의 '독서클럽', 이 곳에는 암흑의 독서클럽지가 존재한다. 학원의 정사에 남지 못할 사건의 전모를 대대로 부원들이 재미 삼아 기록한 것이다. 본명을 남기지 않고 코드명이나 별명을 서명삼아 기록한 글들, 이 기록은 이 학교의 역사다.
몇 편의 단편들밖에 실리지 않아 백년간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든 궁금증을 다 풀어버릴 수 없어 아쉽다. 하지만 분명 기억에 남는 특이한 일들을 기록해 놓아 독자의 관심을 끌어냈을 것이다. 2019년 부겐빌레아로 불리는 소녀가 그 해의 왕자로 뽑힌다. 역사를 기록한 암흑의 독서 클럽지는 외부에서 이 독서클럽의 이름을 전하고 있는 노인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부겐빌레아 사건이 독서 클럽지에 기록된다. 부겐빌레아, 의적이라고 이름 붙은 그녀는 꼭 일지매같다. 얼마나 다양한 소녀들이 이곳을 거쳐간 것일까. 그들이 직접 쓴 독서 클럽지를 나도 볼 수만 있다면 "관습과 행위"의 가게안에 들어가 꺼내오고 싶다. 세월과 함께 남녀공학이 된 성마리아나 학교는 옛 추억마저 퇴색되겠지만 소녀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