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에 살인충동을 느끼는 에릭.

텐더니스 ㅣ 밀리언셀러 클럽 85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상냥함, 친절함, 따뜻함을 뜻하는 '텐더니스'. 표지 그림조차도 깃털이 부드럽게 날아다니는 모습에 제목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깃털 끝부분에 시선이 머물며 숨을 멈추게 된다. 붉은 피빛, 떨어질듯 떨어지지 않고 깃털끝에 맺혀있는 이 붉은 피를 보며 어떤 광기가 나를 책속으로 몰아갈지 가슴을 두근거리며 따라가게 된다.

 

가늘고 부드러운 목을 보며 살인 충동을 느끼는 에릭, 흑발의 아름다운 소녀들을 보면 흥분을 하게 된다. 연쇄살인범인 에릭이 처음부터 나에게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몇년전 에릭을 만난 적이 있는 가출소녀 로리가 텔레비전으로 소년원에서 석방되는 에릭의 모습을 보며 그녀 또한 에릭에게 집착을 느끼며 다가서게 된다. 어머니와 하비에게 학대를 받아 살인을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지만 분명 에릭은 살인을 저질렀는데 어찌하여 로리는 이 위험한 그에게 다가서는 것일까. 사람에게 집착을 느끼게 되면 키스를 해야만 그 집착에서 놓여날 수 있는 로리, 그녀의 모습이 위태롭기만 하다.

 

경위 프록터는 로라 앤더슨, 베티 앤 터사의 이름을 읊으며 에릭이 죽였다는 심증을 가지고 그를 대한다. 엄마, 계부 하비, 로라, 베티까지 4명을 죽인 에릭, 물론 프록터가 모르는 또 한명의 희생자까지 분명 에릭이 죽였다. 과연 프록터가 에릭을 연쇄살인범으로 어떻게 검거하게 될까 기대를 가졌는데 에릭이 잡히는 이유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이제야 자신안에 있는 살인충동을 눌렀는데, 부성애를 느껴 보호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 그의 행운은 엄마와 계부를 죽이고도 성인으로 죗값을 치루지 않고 소년원에 있다 나온데까지였나 보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소년 에릭이 저지른 연쇄살인은 그리 완벽하지 못했는데도 경찰들은 증거조차 잡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미행, 함정을 통해 에릭이 걸려들기만을 바란다. 이건 너무나 소극적인 대응이다. 로리가 에릭을 처음 만났을 때 에릭은 한 소녀를 죽인 뒤였다. 로리는 그 상황을 나중에 만난뒤에야 모두 알게 되었고 오히려 에릭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사랑이라니, 정말 사랑이었을까. 지금까지 많은 남자를 만나본 건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잘해 준 유일한 사람에게 느끼는 것이 정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살이자인걸 알면서도 묵인하고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하는 로리를 보며 그녀 또한 그때부터 에릭의 살인을 돕는 공범으로 보게 된다.

 

어쩌면 로리와 에릭이 제대로된 결말을 맞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을 쫓는 경위 프록터, 연쇄살인범 에릭. 이미 해답은 나와있는데 그 과정을 쫓아가는 방법은 뭔가가 부족해 보인다.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도 않고 살인범을 쫓아가는 과정에 긴박함을 느껴야 함에도 오로지 부드러움, 살며시 잠이 들것 같은 안온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어떤 더 끔찍한 살인현장을 바란 것일까. 갑자기 잡혀버린 에릭의 모습을 보며 허탈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경찰들이 제대로 된 증거를 가지고 에릭을 쫓는 것이 아닌 우연한 일로 그를 잡게 된 것에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대한 기억, 그의 몸을 덮은 풍성한 흑발. 이제야 에릭이 왜 흑발의 소녀들에게 다가섰는지 알게 된다. 이것만 가지고 에릭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부드러움에 살인충동을 느꼈는지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