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신화처럼 숨을 쉰대요" 신화처럼 숨을 쉰다는게 무슨 뜻일까.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낸 그들만의 역사가 있듯 꼭 고래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듯 여겨진다. 장포수 할아버지가 고래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고 그는 처용포에서 또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니은아........"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장포수 할아버지의 뒷말은 무엇이었을까. 친 손녀가 아니라 인사도 없이 떠났다고 서운해하는 니은에게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단 한마디로 말해 줄 수 없었기에 아무말 못한 것이 아닐까. 열일곱 살 니은이는 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 "왕고래집 식당 할머니는 열다섯살에 시집가고 처용포의 전설적인 고래잡이 포수 할아버지는 열여섯살에 고래배를 탔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며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친구 나무는 그런 니은이에게 중요한 해답을 제시한다. 왕고래 식당 할머니와 장포수 할아버지에게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셨어요?"라는 질문을 하며. 이 책은 성장소설이라고 불러야할 것 같다. 열일곱살의 니은이가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왕고래집 할머니의 한글노트에서, 장포수 할아버지의 고래배를 생각하는 각별한 마음에서 자신이 살아가야할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는지 배운다. 내 가슴속에도 머물다 가는 좋은 말들을 얼마나 많이 해 주시는지, 내 안에도 열일곱살적의 모습이 있고 서른살이 넘은 지금의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바다가 내 몸을 가득 채워버린 느낌이 들었다. 열일곱살에 홀로 세상에 맞서게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니은이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을게다. 니은이에게 "이해한다고, 이젠 꿋꿋하게 일어서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면 나무에게 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니은이는 매정하게 소리치지 않았을까. "나는 엄마, 아빠가 없는데 넌 있잖아. 난 동생이 없는데 넌 있잖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니은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힘을 끌어모았겠지만 세상에 발을 내밀긴 아직 너무 일렀을 것이다. 편의점 유리창을 향해 음료수 깡통을 날린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들이 이 음료수 깡통에 모두 녹아 있었을 것이다. 니은이의 이런 행동에 난 얼마나 놀랬던가.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몸 안에 소용돌이 치는 것들을 밖으로 뿜어내지 못해 니은이는 그렇게 마음속에 있는 칼날과 표창들을 집어던졌건만 오히려 나는 니은이의 이런 모습이 낯설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작살에 맞은 고래가 죽기 전에 마지막 숨을 내뿜는데, 그 숨에 피가 뿜어져 나와 핏빛 물뿜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온 바다 가득 퍼지는 것을 꽃핀다고 한다. '꽃피는 고래' 이 말이 주는 끔찍함에 몸서리치지만 고래와 마음이 통하고 고래가 꽃을 피울 때는 고래 영혼이 몸안으로 들어온다고 한 장포수 할아버지의 말은 고래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서 그도 고래와 함께 신화속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바다에 나가면 고래들을 볼 수 있으려나. 어슴푸레한 곳에서 고래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장포수 할아버지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 말을 꼭 물어봐야지. "바다에 두고 온 마지막 귀신고래는 만나셨나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