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장난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6년생인 작가 전아리, 그녀는 '문학천재'로 불리운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기억도 못한다니, 참 부러운 일이 아닌가. 어두운 표지의 "시계탑"보다 "즐거운 장난"의 표지는 따뜻한 봄 풀밭을 달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나를 반겨줄줄 알았다. 그러나 책속의 음울한 이야기들을 보며 가슴 서늘한 느낌에 몇 번이나 표지를 다시 쳐다보았는지 모른다. 저자의 경험을 이 책속에 녹여내진 않았을텐데, 왜이리 내 머릿속을 자극하는 것일까.

 

무심하게 책장을 넘겨가던 내가 단편 "내 이름 말이야"를 읽으며 열기가 등줄기를 관통하여 목뒤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트렌스젠더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는 동아리 사람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영화 <헤드윅>의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작품을 위해서 그의 삶을 취재하지만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아가고 싶은 그의 마음은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 "내 이름은 말이야. 모영욱이 아니라 '모영은'이거든". 다큐멘터리를 본 그가 '나'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이름 하나가 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너프 필름'이란 살인이라든가 신체절단 등 각종 엽기적인 행각을 셀프카메라처럼 찍어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만들어놓은 것을 말한다. 세상에 별난 필름이 다 있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읽었는데 "도진석"이라는 이가 다큐멘터리를 찍은 그에게 소포를 하나 보낸다. 도진석, 모영은의 애인인 그가 왜?. 모영욱으로 살기를 거부한 모영은이 자신의 신체를 잘라 낸 스너프 필름을 보며 충격때문에 나 또한 몸 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느꼈다. 왜이리 끔찍한 글을 쓴 것일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타인의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괴롭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미로 읽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것일까. 처절한 그의 삶을 보라고 내 얼굴을 잡고 누군가 움직이지 못하게 해 버린 것 같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다.  

 

이제 저자가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줘도 참아낼 수 있는 강심장이 되어 간다. 익숙해지는 것이겠지. 키가 아주 작은 아버지와 아들이 밤업소에서 묘기를 부리며 먹고 사는 "외발자전거"는 순간 다른 책 <완득이>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 어둠의 깊이는 확연히 다르다. "완득이"는 힘든 상황이지만 웃음으로 유쾌하게 버무려냈다면 여기 "외발자전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낸다. 아버지가 죽은 후 떠난 여행지에서 데려온 여자와 함께 살면서 작은 행복을 알아가던 그에게 불행한 일은 끝나지 않았고 밤무대 가수의 뒤에서 외발자전거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모욕적인 일이라며 거절하던 그 일을 하며 속으로 얼마나 울었을 것인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확연하게 다른 느낌의 "외발자전거"와 <완득이>는 세상에서 보여지는 모습뿐 아니라 다른 면의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단편 "박제"는 공포소설을 보는 듯 소름이 끼치고 "파꽃"을 보며 노름을 하는 어머니로 인해 망가지는 딸의 인생이 안타까워 가슴이 저리게 된다. "범람주의보', "팔월" 등 어느 것하나 평범한 단편들이 없다. 모두 어둡고 그늘진 이야기들 뿐이다. 왜 책 제목을 "즐거운 장난"이라고 지었을까. 표지때문에 책 내용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인생이 그저 즐거운 장난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차례 꿈을 꾸고 그냥 털어버릴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지. 하지만 그리 쉽게 살아지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전아리의 책은 솔직히 그녀의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빨리 비워내고 싶은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어 웃음짓고 있는 그녀에게 묻고 싶어진다. 경험하지 않은 소설속의 내용들이라면 그 어떤 것들이 이 글을 쓰게 했는지, 이런 일들을 보았냐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질문들을 보며 내 마음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은 더 끔찍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몰라. 그걸 알잖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