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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
후안 호세 미야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훌리오의 아내 라우라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옆집에 살고 있는 마누엘의 사고소식이었다. 코마 상태에 빠진 마누엘, 그의 아버지가 훌리오에게 마누엘의 집 열쇠를 주며 우편함 관리를 부탁하게 되면서 이 책은 시작되고 있다. "거울 속에 들어가서 이웃집 남자로 살다가 돌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이고 마누엘이 살고 있는 집과 훌리오와 라우라가 살고 있는 집은 모든 배치가 반대로 되어 있어 흡사 거울을 보는 듯 하여 훌리오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는 라우라, 얼마나 기다렸던 아이였던가. 하지만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니 아니라고 한다. 이후에 훌리오의 행동엔 물론 문제가 많았다. 위로가 필요한 아내에게 무심하게 대하고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져 상실감을 느끼는 자신만을 챙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라우라가 훌리오에게 집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여동생 아만다의 딸 훌리아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훌리오는 점점 더 아이를 원하는 자신을 느끼고, 갈 곳이 없어 마누엘의 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옆집에 있는 라우라가 무엇을 하는지 소리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마누엘의 집에서 마누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훌리오는 평소에 마누엘을 동경하고 있었나 보다. 마누엘 앞에서야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그를 비난하지만 마누엘의 집에서 스스로 마누엘이 되어 그의 옷과 화장품을 쓰며 마누엘처럼 살고 싶어진다. 나에게도 열쇠를 누가 쥐어준다면 그 집에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겠지만 차마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사람의 물건까지 쓰고 싶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양심의 문제라기 보다는 아마 나의 성격탓일 것이다.
마누엘의 컴퓨터에서 개인정보를 살펴보다 큰 충격을 받는 훌리오. 건드리면 안되는 메일을 보게 되었는데 누구를 탓하랴. 열어 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것인데. 라우라와 마누엘은 이미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옆집으로 이사오면서 훌리오를 기만하며 두 사람은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어떻게 옆집에서, 그것도 남편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도 서로 바라보며 간절한 눈길을 주고 받을 수 있었을까. 훌리오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지는게 당연하다. 충격으로 죽지 않는게 이상하지 않나. 마누엘의 사고 소식으로 마음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라우라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훌리오에게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후 뱃속의 아이를 마누엘로 느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훌리오를 내쫓는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누엘은 라우라에게 보내는 메일에서 훌리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로인해 라우라가 마누엘과 훌리오 사이에 끼어든 것 처럼 보인다. 자신이 훌리오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라우라의 가치를 알게 된다면 훌리오가 어떻게 행동할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누엘의 글을 보면서 훌리오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된다. 마누엘이 죽고 훌리오가 선택한 삶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훌리오가 마누엘의 집에서 마누엘로 살아간 며칠간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 틀림없다. 다른 사람들은 훌리오 같은 경우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아마 나는 라우라에게 그동안 자신을 기만한 행동에 대해 따지고 들지 않았을까. 분명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돌아섰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엿보고 타인의 삶을 훔친 훌리오. 마누엘도 훌리오의 인생을 훔쳤다고 보여지지만 두 사람의 엇갈린 인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