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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끽연자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표지에 있는 이 남자 왜이리 처량해 보일까. 츠츠이 야스타카의 전작 '헐리웃헐리웃'으로 조금 실망했던터라 이 책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책장을 넘긴다. 그런데 막 터져나오는 웃음, '하하하하' 너무 크게 웃어서 괜히 민망해진다. 이 글이 정녕 20년도 훨씬 지난 글이란 말인가. 너무나 기발하고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가볍지 않은 내용에 누구든 놀라게 될 것이다.
학교나 회사에 있을때면 지루해서 "시간 빨리 안가나" 한숨짓게 될 때가 많았는데 단편 "급류"를 보면서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지루했던 시간 뿐 아니라 잠자는 시간은 물론 나의 여가시간도 같이 빨리 흘러간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녁에 화장실을 가면 동이 터서 나오고, 맥주 두 잔에 두 시간이 흐르는 것은 이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다. 며칠 뒤에 있을 약속을 위해서는 3-4일전에는 출발해야 하고 기차가 도착하여 문이 열려 타려고 하면 기차는 떠나고 철로위에 몸이 떨어질 정도의 스피드로 달린다. 온 세계가 이렇게 급류에 휘말리고 있었다. 정말 세상이 이렇게 변한다면 금세 늙어서 죽지 않을까. 너무나 끔찍하다. 역시 물 흐르듯이 주어진대로 천천히 사는게 제일이다.
"최후의 끽연자"는 사회풍속도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 요즘엔 끽연자들을 위한 자리가 줄어들고 있어 흡연자들을 무슨 전염병 환자처럼 대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정도의 시대가 분명 올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담배연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물론 담배냄새를 극히 싫어하고 혐오한다. 지상에 몇 명 남지 않은 끽연자들이 테러를 감당하지 못해 한 건물에 모였다. 모두 가지고 있는 담배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피우고 죽으리라 결심을 하게 된다. 테러범들을 막기 위해 집 울타리에 철망을 두르고 전기를 흘려 보내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것이 전쟁의 한 형태임을 알게 된다. 담배 피우는게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가 놀라게 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최후의 끽연자를 천연기념물로 보고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서늘해진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이기적일까. 참 무서운 세상이다.
누가 타잔이 정의의 기사라고 이야기 했던가. 이것 또한 우리가 만든 허상일 것이다. 노경의 타잔은 기력이 쇠하여 나무에서 자주 떨어지고 몸이 안쑤시는데가 없다. 눈이 점점 나빠져 원숭이 꼬리를 나무로 보고 잡아당기기도 하니 말 다했다. 동물들과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순수 그 자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던 타잔이 늙어가면서 이렇게 변하다니, 단편 "노경의 타잔"을 보면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삶의 의욕을 얻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늙어가는 타잔의 모습을 그렸다. 나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타잔이 관광상품이 되어 여행사에서 보낸 탐험단의 구경거리가 되는 모습이 안타깝고 타잔의 아들이 여행사에 근무하며 탐험단들을 보내는 모습은 과히 충격적이다. 탐욕스럽게 변한 제인의 모습도 마찬가지. 정글에 살고 있는 이들이 우리와 다름없이 변해가는 모습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SF를 좋아하며 열광하는 내게 "혹천재"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그 끔찍한 생물을 등 뒤에 심어 머리가 좋아져서 성공하려는 인간의 모습에서 답답한 가슴이 일시에 무너져 내린다. 이젠 기대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꼭 내 등에 그 벌레가 붙어있는 듯 끔찍한 느낌이 들어 '성공'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숙주에게 붙어 기생하는 럼프티 험프티를 스스로 붙여야 하나, 아주 기분이 이상해진다. 유쾌하게 웃다보면 가슴은 서늘해지고 입은 굳게 다물어진다. 점점 더 뒤로 갈수록 그 충격이 줄어들긴 하지만 "야마자키", "상실의 날" 등을 읽으면서 작품들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점점 사회는 무섭게 변해가고 이 책속에 있는 일들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무시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동안 시간의 급류에 휘말리고, 최후의 끽연자의 모습을 보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블랙코미디라고 마음을 위로해봐도 답답한 마음이 풀어질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