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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질투
이자벨 라캉 지음, 김윤진 옮김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고종황제의 밀사와 프랑스 여인이 유럽을 무대로 펼치는 비극적 사랑의 오페라!"
책 뒷편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신경숙님의 '리진'과 김탁환님의 '리심'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물론 '꽃들의 질투'의 상황과 반대되긴 하지만 조선의 여인과 프랑스 남자의 사랑 또한 같은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리진'과 '리심'처럼 이 책은 내 마음을 울리진 않는다. 작가가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대표적인 한국계 작가라고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일까 공감이 되지도 오롯이 몰입이 되지도 않았다. 그 시대 고종황제의 밀사와 프랑스 여인의 사랑이 어떻게 끝을 맞게 될 것인지 짐작을 하면서도, 이 책에 몰두하며 내 감정을 다 뿌려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안타까웠다.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일환의 아내 순희, 답답한 마음에 무당까지 찾아나선다. "당신에게 돌아올거야. 그럼, 반드시 돌아오고말고......"라 말하는 무당을 통해 일환과 엘레나의 사랑이 어떻게 끝이 나게 될지 이미 처음부터 그 결말을 정해두고 이 책은 시작되고 있다. 굳이 복선이라고 할 것도 없다. 조선에 아내가 있는 일환이 프랑스에서 만난 엘레나와 행복하게 살지 못하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으니까. 새로운 사랑에 눈뜬 일환을 보며 나는 조선에서 가슴 졸이며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순희의 모습이 겹쳐보이기에 이 둘의 사랑에 가슴이 설레이지 않는다. 시대의 아픔, 그 시대에는 사랑은 물론 사는 것조차 사치라 느껴질 정도로 절박했었기에 작은 나라 조선에서 고종황제의 밀사로 파견된 일환이 새 문물을 접하고 점점 그 속에 젖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유쾌하지 않다.
일환과 함께 떠난 그의 하인 유복, 일환과 다르게 조선의 문화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김치를 담그고 이사하고 고사도 지내며 민간신앙을 유지하는 유복을 보며 일환은 마뜩찮아 하지만 프랑스 처녀 피에레트와 결혼하여 프랑스에 정착한, 어디에서나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유복의 생명력을 통해 오히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크게 느끼게 하지 않는다. 엘리트 계층의 일환과 엘레나의 사랑도 이루어졌다면 좋았겠지만 역시 신분을 넘어선 사랑은 이 시대에서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기가 힘이 들었던 이 책을 통해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지만 살아가는 것조차 힘이 들었던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 고종황제의 밀사로 프랑스에 간 일환의 모습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전해줄 수 없어 아쉬웠다. 내 나라 역사이건만 왜 그렇게 몰입이 되지 않던지. 일환과 엘레나의 사랑 또한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져 당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