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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폐허'라는 책 제목을 보고 나는 그저 인적이 드문 파괴된 도시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책의 주요배경은 마야의 정글, 식인덩굴이 자라고 있는 곳이었다. 파블로, 제프, 에릭, 스테이시, 에이미는 고고학 탐사팀을 따라간 마티아스의 동생 헨리히를 찾기 위해 동행을 하게 된다. 지루하고 따분한 호텔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멋진 모험을 기대하고 떠난 이들에게 너무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니 이 책을 영화로 만들었다면 나는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이 상황에서 에릭과 스테이시, 에이미는 이 곳에서 구출되어 자신들의 일이 영화로 만들어질 경우 누가 자신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파블로의 그리스인 친구들이 그들을 찾아오지 않으면 이 곳에서 덩굴에게 잡아먹히게 될 것이란 것을.
덩굴의 번식을 막기 위해 이 곳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을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막는 마야인들, 피도 눈물도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여행객들은 그저 떠나면 그만이지만 덩굴의 씨앗들이 접촉을 통해 번식을 하고 그 영역을 넓혀가기에 오직 그 곳을 막고 폐쇄시키는 길만이 그들의 살길이었다. 마야인들에게 그들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혀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저 이 공터 안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유추할 뿐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불신하며 덩굴의 계략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 보여주지만 분명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왜 이들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그저 어이없는 죽음으로만 보여지기 때문이다.
제프 일행들을 감시하며 그 곳을 벗어나면 죽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활과 총을 겨누는 마야인들, 덩굴에 휩싸인채 조금씩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마야인들은 이 사람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고 덩굴속에 갇힌 사람들은 그들을 구출해줄 사람들을 기다린다. 오직 이 곳엔 시간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고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은 덩굴뿐이다. 사람보다 더 영악한 덩굴의 존재. 핸드폰 소리와 새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목소리도 흉내내는 덩굴의 존재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체계적인 계책을 가지고 그들의 숨통을 조여오는 덩굴은 서로를 이간질 시키고 보이지 않는 동료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기까지 한다.
왜 제프 일행들은 떠나기 전에 안내인을 고용하지 않았을까. 먹을 것을 충분히 마련하고 찾아갈 곳에 대해 여러가지 알아봤어야 했다. 돌아오지 않는 동생 헨리히를 찾아가건만 너무 준비가 소홀했다. 그저 피크닉 가듯이 가볍게 준비하고 나선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가볍게 떠난 그들이 마주한 현실에 끔찍함을 더하기 위해 그랬겠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한장 한장 넘기기가 너무 지루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공포심을 느꼈지만 나도 함께 시간과의 싸움을 벌리기엔 이들이 죽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마야정글에 가기까지의 여정이 더 자세히 다뤄져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사흘 뒤 파블로를 찾아온 그리스인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과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더 이상의 공포, 긴박감을 선사할 수 없었던 것, 이것이 이 책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