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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미르뿐 아니라 나의 눈에도 실패를 잡고 있는 소랍의 손을 언청이 입술을 한 남자아이의 굳은 살 박힌 하산의 손으로 보여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그 옛날 연싸움에서 이겼을때 집 지붕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던 바바의 모습을 본 후 아미르의 가슴이 이렇게 벅차 올랐던 것은 그날 이후 처음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하산이 고통받을 때 아미르가 비겁하게 숨지말고 용기있게 나서주었다면, 하산에게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워 나가게 하지 않았다면, 바바가 하산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었다면......이렇게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기에 내내 내 머릿속에서 "~라면"이 줄곧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하산을 하인으로 대하고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아미르 역시 그 땐 아직 어린아이였음을 알고 있다. 하산이 아세프에게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서도 나서지 못했을 때 아미르를 비난했던 '나'는 과연 그런 일을 겪었을 때 당당히 나섰을 것인가. 아니, 분명 비겁한 나 자신에게 화가나서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며 아미르처럼 하산을 철저히 외면했을 것이다. 하산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예전의 사이로 돌아가길 원하지만 자신을 밀어내는 아미르에게 이 말을 했을때 아미르는 이번에도 하산을 외면해 버린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났지만 미국에서 생활하는 내내 하산을 생각하던 아버지 바바, 역시 그에게 아미르는 반쪽짜리 아들일 뿐이었을까. 손을 뻗지 못했던 하산에 대한 마음과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아들이라고 밝힐 수 있었던 아미르에 대한 마음, 이 두 마음에서 번민하고 고통스러워했을 바바의 마음을 알 수 있지만 죽기전에 모든 것을 밝혀 주었다면 좋았을텐데 끝내 가족이 되지 못했던 하산이 떠올라 안타까울 뿐이다.
어딜가나 선과 악은 공존하지만 이 책에서는 철저하게 '악'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세프. 어릴적 하산을 괴롭혔을때 그를 응징했어야 했다. 아미르가 멋지게 벌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세월이 흘러 소랍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뿐이었다. 역사는 돌고 돌듯 인연의 고리들이 끊어지지 않고 또 다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하산의 아들 소랍의 운명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미르는 아세프에게 맞으며 그 옛날 하산을 도와주지 못해 가슴속을 누르던 무거운 마음이 어느새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이젠 도망가지 않고 제대로 맞서리라. 소랍을 데려오기 위해 아미르는 아세프에게 맞아 죽을뻔 하지만 그 자신의 어깨에 놓여있던 잘못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을 닫아버린 소랍이 연을 날리며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여는 것을 보며 하산과 아미르의 어릴적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연싸움을 해 연줄을 잘라내면 그 연을 가지러 달려가던 하산,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만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소리치며 골목을 달려가는 하산의 모습을 이젠 다시 볼 수 없지만 소랍을 위해 "너를 위해 천만번이라도 그렇게 하마" 소리치는 아미르의 목소리를 통해 희망을 느낀다. 누구나의 삶에 해피엔딩이라는 끝은 없다. 삶은 영화가 아니기에 계속이어져야 하니까.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감싸주고 용서하며 함께 살아가다 보면 작은 행복도 느끼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