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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몇가지의 길을 두고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많다. 고민끝에 그중에 가장 나아보이는 길을 선택하지만 늘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단 한번의 선택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갈수도 있을테니까. 체실 비치의 외딴 호텔방에서 첫날밤을 맞이한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에게 그날 그들이 선택한 길은 평생 후회스러움을 남겼을 것이다. 해변에 햇살이 부서지듯 찬란하고 아련한 느낌의 사랑을 한 두 사람이 이제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건만 서로 이해해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등을 돌리게 된다.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이 자리에 왔는지 그 과정을 지켜본 독자들이라면 이들의 행동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전혀 마주칠 일이 없었던 남녀가 어떤 끌림에 의해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분명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극적인 장면이다.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을 만날 생각으로 기차역까지 간 에드워드는 런던으로 가는 기차가 아닌 반대 방향인 옥스퍼드 행 기차를 타게 된다. 핵군축 캠페인 점심 모임을 알리는 표지를 보고 그 곳에 참석하기 위해 가게 된 에드워드가 여기서 처음 플로렌스를 만나게 된다. 전혀 모르던 두 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다 한 장소에 함께 머물러 있었음을 알게 되며 가슴 두근거리는 감정을 가지며 사랑을 키워왔는데 흔히 드라마에서처럼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두 사람이 맞이하는 해피엔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에겐 결혼이 사랑의 종착역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첫날밤에 잘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에드워드와 관계를 가지는 것에 혐오감을 가지는 플로렌스, 지금의 자유로운 문화를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 때는 참으로 보수적인 시대이기에 등을 돌리며 서로의 길을 간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다 하여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깨끗하게 정리가 되는 것을 보며 그 보수적인 곳에서 이 상황이 어떻게 용납이 되는 것인지 놀라운 것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로 그리워하며 보내는 그들은 단 한번의 만남도 가지지 않은채 시간은 흘러간다. 그 날의 상처가 너무 커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라면 그 사랑의 깊이도 깊을 것인데 이렇게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외면한 두 사람을 보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던 체실 비치는 여전히 그대로일텐데 등을 돌려 자신을 떠나는 플로렌스를 잡지 못한 에드워드는 지금도 체실 비치를 떠올리며 플로렌스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잠깐의 사랑이었지만 평생을 그리워한 이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결말에 나는 저자에게 배신감마저 느끼게 된다. '사랑은 무조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둘을 떼어놓는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한번의 선택으로 어긋난 둘의 사랑이야기는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