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선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마르크는 친구인 다미코와 사랑하는 사람 소피의 시체를 본 후 코마상태에 빠져 그들과 함께 한 마지막 시간들을 잊게 된다. 끔찍하게 훼손된 소피의 시신을 보며(직접 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으니 사진으로 본) 살인범이 왜 그녀를 그렇게 끔찍하고 잔인하게 죽였는지 그들의 심리,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불행한 사건을 잊기 보다 그것을 대면하고 파헤치는쪽을 택한 마르크는 '까나라'에 수감된 연쇄살인범 르베르디에게 위험한 게임을 제안하게 된다. 여자의 피를 신성시 하는 르베르디에게 가상의 인물인 '엘리자베트'를 만들고 그에게 편지로 접근한 것이다. 르베르디가 이르는대로 그가 행한 살인의 길을 따라가는 마르크, 순간순간 두려움을 느껴 포기하고 싶지만 그 실체에 다가갈수록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강렬한 힘을 느낀다.

 

마르크는 직업이 '기자'이기에 일반 시민들보다 정보를 알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르베르디가 던지는 단서들을 가지고 그가 어떻게 여자들을 죽였는지 머릿속에 똑같이 재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한다. 여기에서 한가지 생각해 보자면 르베르디는 '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을까' 이다. 그저 심리학을 전공할 뿐인 엘리자베트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자신의 자취를 찾고 있건만 그 정보를 그렇게 단시간내에 파악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다니, 거기다 남자인 마르크가 여자 흉내를 완벽하게 낸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가? 아마 르베르디는 자신과 엘리자베트의 영혼이 이어져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문의식'을 잘 치뤄내는 엘리자베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르베르디, 모든 것을 알아냈을때 마르크는 어떻게 행동 할 것인가. 그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생명의 길'을 따라 칼로 베고 거기에 치유의 힘을 가진 꿀을 바르는 르베르디, 마르크가 그의 행동을 떠올릴때마다 구역질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내 머릿속에 꿈틀대는 르베르디의 힘을 느끼며 속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마르크, 그는 엘리자베트의 사진을 보낼 때 '하디자'의 사진을 보냈었다. 그녀가 모델로써 인기를 얻게 되어 마르크가 한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하디자는 르베르디의 표적이 되어 버린다. 솔직히 모든 사실을 알아내고 책을 내어 '부'를 거머쥐려는 마르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위해 그렇게 위험한 게임을 하다니, 이제는 자신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어디론가 떠나 숨을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애초에 '악'의 얼굴과 마주하려던 그의 동기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출판사 사장에게 위험이 있을 것이란 언질을 주면서 왜 그는 르베르디의 편지를 받는 유치우편 담당 직원 알랭과 하디자를 모델로 키운 뱅상을 생각해 내지 못했던가. 그의 이런 행동을 볼때 마르크는 르베르디의 상대가 될 정도의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다!"

뱅상의 피로 써 놓은 르베르디의 글을 보면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르베르디는 분명 감옥안에서 사형을 당할 죄수였다. 그런데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르베르디를 데리고 나서며 엉성하게 승용차에 태워 데려가다니 이것은 "도망가라"고 떠미는 것과 뭐가 다른가. 르베르디와 마르크의 정면대결을 위해 르베르디의 탈출은 필요한 부분이었겠지만 너무 엉성해서 헛웃음마저 나온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작든 크든 '악'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조금의 선한 모습이 악의 모습을 누르며 살아가지만 자신안에 든 '악'의 진정한 모습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심리상태를 직접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구든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궁금해서 손을 뻗게 될 것이다. 내 안에 들어있는 '악'을 깨우게 될지라도 말이다. 마르크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악'의 실체가 궁금해서 르베르디에게 다가갔지만 자신 안에 있는 '악'을 깨움으로써 스스로 '악'이 되어 버린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대로 상처가 잊혀진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악'과 마주할 것인가. 그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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