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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 시즌 1 ㅣ 엘링(Elling) 1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엘링의 독백, 이 책은 거의 엘링의 공상의 세계나 독백으로 이루어지지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인 엄마가 죽었다는 글로 시작하기에 온통 배경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엘링은 잘 버텨낸다. 17-B동에 사는, 화분에 물을 주는 리게모르 욜센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떠올라 그녀를 망원경으로 관찰하며 슬픔을 달래며 의지하는 엘링. 아마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스토커라며 신고해 버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알기에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방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보며 자신만의 공상을 하는 장면에서는 지루하고 그의 끝없는 상상의 세상에 질려버린다. 나는 아무래도 타인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주지 않는 엘링, 혹 투명인간이 아닌가 생각되어 일어나서 박수를 쳐보는 모습에선 풋~하고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땐 그의 탁월한 표현능력과 묘사방식에 놀라기도 한다. 나도 엘링처럼 타인의 삶에 늘 관심을 가진다. 집안에 불을 켜야만 할때는 맞은편 아파트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게 되는 나의 모습 또한 엘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망원경을 들고 보든, 그냥 보든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사람들에게는 기분 나쁜 일일테니까. 꽉 닫쳐진 폐쇄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한데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지겨워지지 않을 것 같다.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일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의 대출금이 남아있어 다른 곳에 옮겨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복지사 에릭센, 모든 집안일은 엄마가 다 해결했는데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엄마가 죽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 엉엉 울어버리는 엘링. 엘링을 집안에서 보호한다는 조건으로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았는데 이제 더이상 그 돈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도 엄마는 엘링에게 이런 말을 해 준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특별하다고 말했을뿐이다. 타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엘링에게 사회의 벽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엘링은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면 이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리게모르 욜센의 집에 있는 생쥐부인이 엘링의 전화를 받았을때 그는 새로 이사온 비욘 그레툰이라 자신을 소개한다. 눈앞의 문제를 인식하려 하지 않는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보이지만 그가 리게모르 욜센에게 얼마나 의지하는지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저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엘링, 비록 어린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자신을 챙겨주고 보호해 주던 엄마가 죽고 없지만 "나는 엘링입니다"라고 자신있게 소개하던 그가 이젠 '비욘 그레툰'이 되고 싶어한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어 망원경을 들었던 엘링은 지금 아마 처절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비록 금세 소설 한편을 쓰듯이 또 새로운 공상을 하겠지만 말이다. 엘링의 사는 모습을 보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때 그 충격이란.......나의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외로움이 엘링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 공감하게 되는가 보다. 이제 엘링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시즌 2, 엘링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탁월한 유머감각으로 나를 유쾌하게 만들어 줄 엘링을 또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