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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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향수"라는 책을 읽을 때처럼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향수를 보며 코 끝에 스미는 그 어떤 향기, 체취를 맡아 보질 못해 마음이 슬프더니 조경란님의 "혀'를 읽으면서도 지원이가 표현해내는 맛을 느낄수가 없어 마음이 불안정해진다. 미식가가 아니기에 그녀가 이야기하는 음식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가 없다. 단맛, 신맛 등 아주 기본적인 맛도 구별해내지 못해 음식을 할 때 간도 잘 못맞추는 나를 지원이가 본다면 자신이 만든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나에게 먹어보라고 권해 줄까?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귀한 사람처럼 느껴지니 음식 하나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사랑' 하나를 가지지 못해 실패 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지원. 함께 살던 남자 한석주와 쿠킹 클래스에 나오는 이세연이 섹스하는 모습을 미닫이 문을 통해 엿보게 되는 그녀는 이세연과 함께 지내는 한석주를 여전히 기다리고, "돌아오라"고 말한다. 왜 이러는 것일까. 도저히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한석주와 함께 살며 쿠킹 클래스를 열기 전 다녔던 '노베'로 돌아간 그녀는 혀의 미각마저 잊어버린채 점점 열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실 자신이 오랫동안 길러 온 '폴리'란 개를 이세연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에게 맡기고 한번씩 보러오는 한석주란 사람, 정말 짜증난다. 지원의 말대로 "아이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아니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원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이세연과 섹스를 한 사람이니 전혀 신뢰할 수 없다. 그러나 지원은 모든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한석주를 사랑했던 시간들도 사라지는 것이니까. 폴리와 함께 한석주를 기다리는 지원이 그래도 맥을 놓지 않고 '노베'에서 열심히 살아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정한 행위를 보고도 충격받지 않을 사람은 없으니까.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 그녀가 한석주에게 최후의 만찬을 제의한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이유로 그를 부른 것이다. 지원이가 선택한 요리는 "혀"로 만든 것, 지원이가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한석주에게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한석주가 사랑하는 여인 이세연의 혀로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남자를 바라보며 지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쾌감을 느꼈을까. 나는 그녀의 이런 행동에 가슴이 트인듯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까지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지원이 이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기 시작했으니까. 한석주가 만들고 싶어하던 둘 만의 집을 이세연과 함께하며 만드는 것을 보고 더이상 그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한 배신감을 느꼈겠지. 이후 지원이가 한석주와 함께 살았던 집을 떠났는지, 이세연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이야기는 한석주에게 '혀'로 만든 음식을 만들어주고 끝났기에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가 되었을지 그 뒤의 상상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 셈이다.

 

이제는 한석주를 마음에서 놓아버린 지원, 그녀는 이제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이탈리아로 떠나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을 만들며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나의 모든 감각을 깨워준 그녀, 가까운 사람들의 곁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삶은 어둡지 않고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다. 조금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보이는 지원의 이야기들이 이렇게 끝나버려 아쉽다. 좀 더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새로운 사랑을 만나 그 행복감을 요리로 표현하는 그녀를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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