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겐지에게 납치 당해 1년간 감금되어 있으며 '밋치'라고 불린 게이코. 얼마나 겁나고 무서웠을까. 겐지가 감옥에서 22년이 넘게 복역한 것에 대해서는 죗값을 받았다는 생각을 했었으나 아베카와 겐지가 편지에서 언급한 "저를 용서해 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도 선생님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에 당황하게 된다. "1년간 이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용서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게이코는 작가로 등단하여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글을 쓰면서 분명 범인에게 연대의식을 가지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은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옆방에 살고 있는 야타베에게 구조되기를 바라던 게이코에겐 야타베가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말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구조 요청의 글을 적어 방문 밖으로 내보낸 종이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야타베가 이 종이를 발견하길 바랬었으나 회사를 그만두고 나갔다는 말을 들었을때의 절망감이란, 아마도 겐지에게 이 편지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갖게 했으리라. 이 때의 상황은 나로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 게이코가 그녀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하나씩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가슴이 서늘해지고 놀라게 되었다.

 

사장 마누라에 의해 겐지의 방에서 풀려나게 되었을때 대체 게이코는 무슨 정신으로 야타베의 방을 둘러볼 정신이 있었을까. 게다가 겐지의 방을 엿볼 수 있는 구멍을 발견하기까지 하다니 대단하지 않는가. 1년간을 야타베에 의해 구조 되기를 바란 마음에 그의 방이 궁금해 들어가 보았겠지만 이것으로 야타베와 겐지, 이 두사람이 공범이라 생각하다니 나는 이때부터 소설속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왜 자신이 당한 일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일까. 죽음의 공포와 구타를 당했건만 밤의 겐지의 모습을 보며 게이코는 겐지의 우위에 서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친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비슷한 정신세계를 가졌던 시간이었기에 그에 대해 함구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녀가 정말로 미워한 사람은 야타베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겐지는 야타베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존재일뿐이었으나 게이코를 납치함으로써 야타베와 별개로 게이코와 함께하고 싶었으니까. 허나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하나 궁금증이 생긴다. 야타베가 요구하는대로 해 주지 않은 겐지는 왜 야타베가 겐지의 방을 계속 보도록 허용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역시 겐지는 여전히 야타베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인가. 

 

글을 남겨두고 사라진 게이코,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연히 야타베를 만나고도 그를 잡지 않고 놔주고 겐지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게이코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도 명쾌하게 답을 못 내리고 있지 않을까. 1년간의 감금생활로 잃은 것은 '현재'라고 했다. 그녀가 감금생활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을때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에 증오심을 느꼈다는 글을 보면서, 아마 나도 뭇 사람들처럼 그렇게 그녀를 쳐다보았을테니 그녀의 증오심의 대상에 포함되리라 생각했다. 사건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음으로써 겐지가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다는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물론 나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녀가 이야기 하지 않은 1년간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뿐이다. 소설속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므로 이후에 결론지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그녀 자신이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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