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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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 두번째로 이 책을 만났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그녀에게 반해 버려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도록 궁금하게 만들더니 이젠 많은 단편들속에 사랑 이야기와 다른 신비롭고 매혹적인 내용을 보여 주어 또 한번 놀라게 한다. 순간 온다리쿠의 단편집을 읽는줄 착각하게 되어 표지에 나와 있는 작가의 이름을 다시 살펴봤을 정도였으니까 짐작이 가리라.  

 

유령과의 사랑을 그린 '쿠사노조 이야기'. 아버지가 유령이라니 후타로와 그의 엄마는 해마다 5월이면 전갱이를 싸 들고 가, 채소 가게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후타로가 13살이 된 그 해 "이제 더는 자신이 필요치 않다"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쿠사노조, 유령이지만 아이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어 가슴이 따뜻해진다. "유령과 어떻게 사랑을 나눠 아이가 태어나냐?"고 반발하지 말자. 책속에서는 무슨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인정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처음에 등장하는 "듀크"란 개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죽어버려 그녀가 힘들어서 울고 있을때 지하철에서부터 지켜주는 한 남자가 있어 괜시리 마음이 설레었는데 이 남자의 얼굴이 듀크의 모습을 닮아 있다는 암시를 줘서 '듀크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기전 자신을 사랑해 준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나 보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하여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나, 지금까지 즐거웠어요. 그말을 하러 왔어요. 그럼, 안녕. 건강하게 지내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 듀크, 듀크가 맞을까? 작가는 절대 이 남자가 듀크라고 말하지 않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김으로써 듀크가 행복하게 떠나갔음을 생각하게 한다. 다행이라고. 그녀가 더는 슬퍼하지 않을테니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외롭고 힘들때면 파를 썰어 눈물을 흘리는 여자. 이럴 때 애인과 통화하면 더 외로움을 느낀다. 나도 외로워지면 파를 썰며 눈물을 흘려볼까. 그럼 후련해지려나.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그런지 "어느 이른 아침" 단편을 보며 이런 날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하야시를 동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오라는 그의 말에 아침 첫 손님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온 후카자와가 있으니 덜 외로웠을터라, 그제야 안심이 된다. 파를 썰며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외로움을 반감시키는 것이 더 좋아보이니까. 물론 오로지 내 생각이다.

 

단편들을 읽으니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지만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 나의 삶도 이들속에 녹아버린 듯 생각되니까. 일부분으로 생각되어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특별하게 생각된다. "차가운 밤에" 책 표지는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외로워지지만 글들을 읽고 있으면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점점 작아져서 없어져 버린다. 누구나 한가지쯤 외로움과 고통을 담고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을 얻어서 그런가 보다. 마음이 차가운날에는 이 책과 함께 하는게 어떨까. 그럼 조금 따뜻해질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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