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오이에게 마빈은 어떤 존재였을까. 쥰세이와 떨어져 있는 동안 잠시 머무르는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 밖에 없는 것이란다"고 페데리카가 말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밀라노에서조차 그 세계와 동떨어져 살고 있는 아오이, 자신의 마음을 쥰세이의 마음속에 던져놓고 와 버렸기에 마빈에게 내어줄 자리는 없었을테지. 늘 떠날 사람처럼 좀처럼 곁을 두지 않는 아오이를 바라보는 마빈의 마음은 불안하다. 아오이의 마음속에 머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결국 떠나간 사람, 아오이는 자신의 사랑때문에 한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10년후 5월 피렌체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두 사람, 아오이와 쥰세이는 그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기에 10년후에도 함께 피렌체의 두오모에 함께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격정적인 사랑은 끝나고야 말았다. 아니 끝났다고 변명하며 마음은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좀처럼 마음을 열어보이지 않는 아오이, 드문드문 이야기하는 글들 속에서 쥰세이와의 사랑이 어떻게 끝났는지,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랑한다"고 마빈에게 속삭이는 아오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쥰세이에게 속삭였던 수많은 "사랑"에 대한 단어와 기억들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던걸까. 마빈에게 너무 잔인했다. 진심이었던 마빈은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는 아오이가 언제든 떠나버릴까 불안했으리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날들속에서, 시간의 흐름마저 멈춰있던 그 때 받았던 한 통의 편지, 쥰세이의 글이었다. 애써 잊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아오이에겐 하나도 잊혀지지 않았음을, 여전히 자신안에 쥰세이가 남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추억속의 쥰세이보다 마빈과 진정으로 잘 되기를 내심 바랬었다. "너를 용서하지 않을거야"고 말했던 쥰세이와 다르게 그녀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준 사람이 아니었던가. 20대의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못잊는 것은 이해하지만 현재의 사랑도 그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10년후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아오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갈구하던 사랑이 결실을 맺은 것도 아니고 이제부터 인생이 새로 시작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곳에 그렇게 의미를 두었던 것일까. 10년간 거의 연락이 없다가 만난 과거의 연인들이 다시 사랑할 확율은 얼마나 될까. 나에겐 이 장소가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오지 않지만 추억만으로 10년을 보낸 아오이에겐 큰 존재였나 보다. 이제는 마음을 열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것이든 깊이 관계하게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아오이가 아닌 열정적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쥰세이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이 책에선 알 수 없으나 더 발전하여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가진다. 햇살 가득한 날도 많은 밀라노가 아오이 덕분에 회색빛으로 다가오니 그녀의 기분이 나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이다. 밝은 모습의 아오이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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