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이 왜이리 정감있게 느껴지나 했더니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친절한 금자씨"때문인가 보다. 총 9편의 단편들속엔 저자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중년의 나이나 환갑, 진갑을 보낸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라 저자의 나이를 살짝 봤더니 1931년 출생으로 "역시 그 나이즈음을 표현했구나"하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도 너무 싫다. 10대에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금지되는 장소가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싶었고 20대에는 품어왔던 이상과 현실의 다름을 인정하기가 힘들었었다. 지금 30대는 어쩜 세월의 속도가 이리 빠를까 눈가의 주름을 신경쓰며 살고 있으니 그 많던 날들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무엇으로 제일 처음 느끼게 될까. '주름'이겠지만 목소리도 늙어가지 않던가. 마음이야 늘 소녀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내 머릿속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어려서 이해되지 않았던 어른들의 행동을 내가 지금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니까. '친절한 복희씨'의 단편들을 읽다보면 저자의 살아온 인생도 보이지만 그녀가 세월에 따라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보이는 것 같다.

 

아둥바둥 사는 모습보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인생을 바라보는 느낌이 묻어난다고 할까. 유독 자주 등장하는 "땅이 화수분이다"라는 말, 흙과 가까이 살고 싶은 소망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시골에서 살며 텃밭을 가꾸고 싶다기 보다 예전 시골인심이 그리워서 땅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겠지. 벽사이에 갇혀서 살아가다 보면 내 다리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부드러운 흙의 느낌을 전해줘야할텐데 늘 딱딱한 바닥을 걷게 하니까.

 

치매가 무서운것은 내 가족도 몰라보고 자신을 잃어간다는 것일 것이다. 간혹 정신이 돌아올때면 얼마나 황망할까. 어릴적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날 찾아다니며 "누구야, 밥 먹어라"는 말이 아이들과의 놀이를 마치게 하여 참으로 싫더니 가족을 이루고 살다보니 친정엄마가 해 주시던 따뜻한 밥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후남아, 밥 먹어라" 단편은 내 마음까지 아프게 만든다. 미국으로 시집 간 딸이 얼마나 마음이 쓰였으면 어릴적에 곧잘 부르던 "후남아, 밥 먹어라"고 부르실까. 가슴이 뭉클해진다.

 

단편들을 읽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유형을 본다. 여기에 등장하는 각각의 주인공들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촛불밝힌 식탁"에서처럼 시댁과 마주보고 살면서 시부모님이 오는 것이 싫어 불끄고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사는, 내 실속 다 차리는 아들내외를 보면 나도 뜨끔해지는 것이다. 사실 나도 시댁이 어려워 가까이 사는게 싫고 가는 것이 아주 부담스럽다. 하물며 자주 찾아오는것을 어찌 반길까. 뭐 한번도 안오시는 것이 지금은 더 섭섭하긴 하지만. 

 

뛰어난 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아닌 내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것은 내 삶에 비추어 비교해 보며 마음의 안식을 얻을때가 많다.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을 보며 "인생은 다 그런 것이다"라고 체념하고 자족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그리움'을 느낄때가 많은데 '친절한 복희씨'에 있는 글들을 보면 그 아련한 느낌이 지속된다. 저자가 경험한 삶을 들려주어 내가 이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찾아낸다면 이들의 삶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리라.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