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외출금지 시간에 한마리의 지하표범이 되어 외출을 감행한 프로피가 던롭 경사를 만난 것은 불행이라고 해야할까,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외출금지 시간에 돌아다닌 다른 한 아이는 채찍질 50대를 받았다고 하니 아무일 없이 집으로 돌아온 프로피에겐 다행한 일이다. 프로피와 벤허 그리고 치타가 전쟁놀이를 하듯 FOD(자유 아니면 죽음)라는 단체를 만들어 영국인에게 대항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세계를 모방한 것일 뿐이지만 나름대로 진지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뿐이라고 생각하진 못할 것이다.

 

친구인 벤허가 미행을 당하는 듯 하여 옥상에서 감시를 하던 중 야르데나가 옷을 갈아있는 장면을 목격한 후로 야르데나에게 사과를 해야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갈등 할 정도로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도 가지고 있는 프로피. 던롭을 만나 영어를 배우고 그에겐 히브리어를 가르쳐 줌으로써 우정을 다져 나간다. 사실 프로피는 던롭을 만나는 것을 첩보 활동으로 생각하여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했지만 FOD(자유가 아니면 죽음)의 총사령관 벤허는 프로피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지 않았는가, "적을 사랑한다"고. 분명 프로피에겐 던롭이 적이다. 그런데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니 친구들이 자신을 '배신자'라고 해도 할말이 없는게 아닐까. 이때의 프로피에겐 영국인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이 분명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상황이여서 많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랑을 한다면 그 누구도 배신자가 아니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어린나이에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역시 '배신자'라는 낙인은 기분이 나쁘다.  

 

프로피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가 처한 상황이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다가 아버지가 슬로건을 만들고 부상자들을 몰래 치료해주는 어머니를 보면서 사태가 긴박하게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러번의 수색으로 몇몇 사람들이 투옥되고 수류탄에 사용되는 지렛대가 치타의 아파트에서 발견되어 치타의 아버지 한 명도 끌려가는 사태에 이르게 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하게 된다. 많은 세월이 흘러 회상하며 쓰는 어린시절의 프로피를 보고 있노라니 '나는 참 편안하고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쓰는 글이란 삶의 한부분을 불안한 도시에서 보냈을 어린 프로피에겐 기억하고 꼭 글로 남겨야 하는 사명감마저 갖고 있었던게 아닐까. 내가 겪었던 일을 타인에게 들려줌으로써 그저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겪었던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을 타인에게 깊이있게 느끼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더불어 자신도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프로피가 친구들과 했던 행동들로인해 나는 그저 그들이 어릴때 흔히 하던 전쟁놀이인줄 알았다.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냐고 말하지 말자. 어른들이 겪고 느끼던 세계를 아이들도 똑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때 아이들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었을까. 친구들과 함께 할 놀이에 대한 생각이 아닌 어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아이들도 고스란히 함께 느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름대로 유혹을 떨치고 적국의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슬픔이 되어 마음에 머물게 된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프로피는 그 시절을 그리워할까. 아니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까. 프로피가 그 뒤로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지만 이야기는 짧게 끝을 맺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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