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갇힌 공간인 아파트에 살고 있다보니 타인의 삶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층간 소음으로 '무엇을 할까' 대충 짐작이 가지만 나와 똑같은 공간을 그들은 어떻게 꾸미고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나도 '관음증' 환자가 될 위험이 있는 것일까. 우연히 맞은편 아파트에 살게 된 라디오 작가 코른누르와 계란 세밀화가 플뤼슈. 사실 난 이 두사람을 함께 바라보는 입장에서 서로가 정신병자, 관음증 환자로 오해하며 대치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서로 만나 오해를 풀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의심하며 지내니 정신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 나는 일기를 안 쓴지 오래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은 늘 일기를 쓰며 기록을 남긴다. 이것이 나중에 더 큰 사건을 일으키게 될 줄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지만 서로를 비방하며 쓰는 글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음에 있는 말을 진솔하게 다 쓰니까.

 

이사하는 날 짐을 나르는 인부들의 사소한 다툼이 코른누르와 플뤼슈에게 오해의 불씨를 남겨 놓았다면 코른누르가 브리숑 부인의 개 엑토르를 죽인 것이 연쇄 살인사건으로 번지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정말 섬짓하다. 서로가 미워하고 의심하는 이런 상황은 정말 죽고 죽이는 관계로까지 가는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알게 되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이 두 아파트가 조종당하거나 감시당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알수가 없어 무섭기까지 하다. 나는 사실 코른누르가 플뤼슈에게 음식배달을 엄청나게 시키고 플뤼슈가 코른누르를 '위대한 도사 막스'로 만들어 적들에게 저주도 걸어주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 서로의 계책인줄 알았다. 그들의 일기 뒷부분에 *표시 뒤에 등장하는 글들이 모든 사건의 배후자라는 것을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었을때 이 시점부터 내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들기 시작했다. *표시가 있는 부분은 처음부터 다시 읽어봤으니까.

 

쓰레기통에 버린 엑토르의 시체가 왜 브리숑 부인의 품안에 있었던 것일까. 발에 고무줄을 묶고 번지점프를 감행 한 브리숑을 누가 살해했다면? 사실 플뤼슈는 그 시간 맞은편 아파트에서 모든 것을 다 지켜봤기에 범인이 코른누르라고 생각한다. 그 전에도 지붕위에 올라간 브리숑을 구하기 위해 코른누르가 지붕으로 따라 올라가지 않았던가. 사실 누군가가 코른누르를 이상한 도사로 만들어 "죽은 엑토르를 데려와달라"는 브리숑의 말에 "지붕위에 있는 고양이의 몸에 엑토르가 들어있다"고 말해서 그녀가 지붕 위에 올라가게 된 죄책감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지만 누가 이 사실을 알 것인가. 아니지 한명은 알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한 사람.

 

이 두 아파트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실 멀쩡한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치료를 받으면 정상인이 될 사람이 몇사람 보이긴 하지만 다들 조금씩은 이상하다. 아마 겉모습으로 판단 해 버려서 그럴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살인범이라고 의심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괴롭힌 사람이 코른누르가 아니란 것을 알게된 플뤼슈가 살해를 당했을때 두 아파트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곳에 모여 부동산 중개인 노데씨와 건물주를 만나 해명하기 바란다고 요구하시 시작했다. 사실 나도 노데가 범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젠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대반전이 일어나니 사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주 끔찍하게.

 

나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상처"가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고 본다. 나를 봐 달라는 마음이 보였으니까.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한 마음이 엉뚱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해야할까. 마음과 마음을 열었다면 이런 사태로 번지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일어날 일이었음을 알지만 내 마음이 착찹하다.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니까. 이 아파트에 이사오는 것부터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종당한 그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죽으면서도 아무것도 몰랐을 그들이 안쓰럽다. 이렇게 사람들은 갇힌 공간에서 이유도 모른채 살고, 죽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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