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비애.

그늘의 계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지금까지 읽었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종신검시관", "루팡의 소식" 밖에 읽진 않았지만 그 안에는 사건과 범인, 시체가 있었다면 여기는 인사문제를 둘러싼 내부의 문제를 다룬다. 피가 보이지 않고 사체가 없어 오히려 안심이 된다고 해야할지, 승진하기 위해 기를 쓰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상대방에게 무릎도 꿇는 모습은 결코 좋다고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면 책의 제목인 '그늘의 계절'의 단편이 먼저 등장한다. 4편의 단편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후타와타리 신지, 인사권을 쥐고 D현경 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모르는게 없을정도로 인사부실에서의 잘나가는 사람중 하나이다. 그래, 이 책의 무대는 D현경 본부이다. 주로 자리가 이동되는 인사가 행해지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늘의 계절'에서는 퇴임한 형사부장인 오사카베가 퇴임후 자리한 곳에서 3년 임기를 채우고 이 곳을 비워주지 않겠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문제가 생긴다.

 

오사카베의 일이긴 하지만 주로 후타와타리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다뤄지고 오사카베를 그 자리에서 그만두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게 되는데 솔직히 오사카베의 딸이 강간당했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남아있으려고 한 것에 대해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느껴져 인사문제 때문에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는 후타와타리에게 짜증이 나기도 했다. 물론 형사부장으로 있을때 미해결 상태로 남겨둔 사건에 대한 의욕으로 볼 수 있으나 그 범인이 오사카베의 운전수가 되어 심리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로 끝맺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라 동조할 수가 없으니 어쩌랴. 범인이 그 사건을 저질렀을때 형사부장으로 있었던 사람의 운전수로 취직하게 되는 확율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범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자살함으로써 그를 용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뿐, 범인이라고 확언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려 과연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봐야하는 것인지 억지스러운 것이다.

 

실력있는 부하직원들이 앞질러 승진하는 상황은 자작극이라도 벌려 승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가 보다. 검찰과로 '생활안전과장이 PUB 무무의 마담과 밀회를 한다'는 투서가 날아들어와 조사를 하게 되는 '신도'. 생활안전과장인 소네 가즈오는 이번 인사에서마저 누락이 된다면 이젠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다. 누가 끌어내리려고 투서를 보냈는지 내부의 누구 소행인지 파헤치는 '시도'. 잘못을 저지른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선과 악에 대해 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이렇듯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를 쓰고 앞으로 나가려고 애쓰는 사람을 파헤치는 작업은 이 일을 맡은 '신도'마저 씁쓸하게 만든다. 이 일을 덮어줌으로써 자신도 미래가 불투명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세상에 알리지 않는 모습에 나는 안도하게 된다. 그래도 세상이 그리 각박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물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후타와타리가 소네 가즈오를 이번 인사에서 제외를 시킨 것이 화가나긴 하지만 말이다. 후타와타리, 어쩌면 이렇게 냉정할 수 있을까. 참 무서운 사람이다. 감찰과에서 조사를 받은 사람을 다음 인사이동때 감찰과로 보낸 행동만 봐도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검은선'에서는 여경의 문제, '가방'에서는 정치계와 경찰의 상호보완적 관계, 약점을 쥐고 있는 부하직원을 궁지로 몰아넣는 모습까지, 작가는 이 이야기들 속에서 무엇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현장에서 땀냄새 풍기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건물 안에서 양복 입고 서류나 들여다 보는 경찰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물론 이 사람들이 경찰의 내부조직을 이끌어가기에 원활한 업무가 이루어지는 것은 잘 알지만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아 가까이 가기가 꺼려진다. 사람 냄새 나지 않은 건물 안에서 이들은 지금도 서로 앞서 가기 위해 친구도 밟고 있겠지. 세월이 지나면 이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행동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인데 그나저나 후타와타리에겐 좌절할만한 일이 왜 생기지 않는거지? 왜이리 후타와타리가 미운건지 내 마음도 쓸쓸해서 그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