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웨어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하지만 지상의 틈에서 지하세계로 떨어져서 생명의 위협마저 느껴야 한다면 나는 그저 조용히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싶다. 분명 이 세상은 내게 보이는 것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증명할 순 없지만 내 주위에 귀신, 유령도 있을 것 같아 런던의 지하에서 천사 이슬링턴을 만난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뭐 날개 달린 하얀 옷을 입은 천사를 직접 눈앞에서 본다면 연극 배우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크루프와 밴더마의 존재를 피해 막다른 골목에서 문을 열고 쓰러진 도어를 발견한 것은 리처드였다. 아, 리처드와 그녀의 약혼녀 제시카라고 해야겠구나. 상처입고 쓰러진 그녀를 못본체 하고 그냥 지나가려는 제시카의 냉정한 모습에서 역시 그녀는 착한 마음을 가진 리처드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처 입고 쓰러진 도어를 자신의 집에 데려온 순간부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과연 이것이 잘한 행동이었을까. 물론 다친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안되는 일이긴 하다.

 

리처드의 말대로 지상에서는 사납게 달려드는 택시만 피하면 되었지만 지하세상에서는 목숨을 지키는 것도 버거울 정도고 먹을 것을 찾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여서 그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되니 자진해서 그곳에서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지하 세계 사람인 도어와 접촉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게 된 리처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도어를 만나러 가는 길 뿐이었다. 이것은 영화 '쥬만지'처럼 주사위를 던져 시작했으면 끝을 내야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게임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하 세계 사람인 도어는 어떻게 리처드의 눈에 보이게 된거지? 리처드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아버지가 죽기전 일기장에 남긴 '이슬링턴'을 찾아가 보라고 한 말에 따라 카라바스 후작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헌터를 경호원으로 고용하여 리처드와 함께 험난한 모험을 하게 된다. 카라바스 후작은 도어의 아버지에게 빚이 있어 그녀를 돕는 것이고 리처드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따라다니게 된다. 악취가 풍기는 하수도에서 사는 사람들, 쥐를 섬기며 돕는 사람들, 물물교환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고 정보나 도움을 받지만 왠지 이런 모습들이 전혀 원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빚을 지면 목숨을 걸게 되는 일이라도 꼭 갚는 모습을 보아서일 것이다.

 

지상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면 다들 미쳤다고 하겠지만 이제는 자신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상의 세계보다 괴수를 물리친 영웅적인 모습을 기억해주는 지하세계를 더 그리워 하는 리처드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문화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과연 천사 이슬링턴을 통해 리처드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도어에게 "검정 예복을 입은 수도사들이 보관하고 있는 열쇠를 가져오라"고 이야기 하여 수도원에 도착한 도어, 헌터, 리처드는 각각의 시험을 통과하여 드디어 그 열쇠를 손에 넣게 되는데 이것으로 과연 모두의 바램을 이룰 수 있을까. 도어는 자신의 가족을 해친 사람을 찾아내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 모험의 끝이 궁금해진다.

 

자신의 생명을 올드베일리에게 맡겨둔 카라바스 후작의 목숨까지 건 희생은 참으로 대단하여 크루프와 밴더마에게 누가 사주하여 도어를 죽이려고 했다는 고작 이런 말을 듣기 위해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바보같기만 하더니 죽어가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그들의 엄청난 비밀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 지하 세계에서의 정의나 의리 같은 것이 놀라워 비록 쥐를 가족같이 대하는 끔찍한 곳이긴 하지만 한번쯤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차갑고 음습하여 얼마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그 곳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 리처드가 그 곳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미쳤다고만 생각하지 않게 된다. 누구나 알아보는 그 곳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살아갈 리처드의 모습이 지상의 세상에서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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