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온다리쿠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이 "여섯번째 사요코"였기에 단편 <도서실의 바다>는 꽤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학교 괴담 같은 사요코의 존재가 썩 유쾌한 것은 아니다. 어느 구석에서 뭔가가 튀어나올까 조마조마하면서 봤기에 책을 다 읽고 났을때는 괜히 긴장한 듯 하여 헛웃음마저 나온다.

 

이 책은 첫장부터 만만하지가 않았다. <봄이여 오라>를 읽다가 도저히 어려워서 못 읽겠다 싶어 책장에 꽂아뒀다가 다시 들었다. 시간차에 의한 똑같은 기억의 반복인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설명을 보려고 뒷페이지를 보니 그저 '시간 괴담'이라고 나와있을뿐 그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온다리쿠의 책은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한 책들이 많은데 결론은 모호한 것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눈앞에서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이야기 해 주지 않으면 납득하지 못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성격이라 끝이 여운을 남기는 내 눈을 통해 직접 볼 수 없는 결말은 오히려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공포심을 일깨우니 온다리쿠에게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리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서니까" <노스탤지어>에서 그리운 기억에 대해 한명씩 돌아가며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니 꼭 괴담을 듣는 듯 소름끼치는 내용도 있고 듣는 이는 공포심이 들지만 본인은 그 아련한 기억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도 기억을 떠올려 볼까. "내가 느낀 첫 그리움의 기억은 언제였지?"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는 믿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아주 어린시절은 기억나지가 않는다. 더듬어 보니 7살때의 기억이 최초의 기억인 것 같다. 어릴적 누군가와 사진을 찍었는데도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을 보면 내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아 여간 섭섭하지가 않다. 아무리 좋은 추억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면 그것은 추억이라 할 수 없을테니까. 그러고 보면 유독 나쁜 기억은 참으로 오래도 간다. 선명한 그 기억은 제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는데 달라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으니 마음만 움츠러든다.

 

<작은 갈색 병>을 가지고 다니는 "미호". 피를 보고 싱긋 웃는 그녀의 뒤를 캐는 세키야가 위태로워 보인다. 분명 그것이 붉은 피라는 느낌이 있어 직접 파헤쳐 보고 싶은 호기심이 그녀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게 하니 세키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직접적인 행동이 나오지 않아 세키야가 당한 그 끔찍한 기억을 내가 짐작해 봄으로써 공포심에 팔에 소름이 돋게 된다. 나의 호기심마저 그녀의 갈색 병을 확인하고 싶다 아우성치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며 가슴만 두근두근거리게 되는 것이다. 살면서 '미호'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기에 나도 그 갈색 병에 대한 유혹을 뿌리쳐야겠다. 그래 나의 용기란 늘 이정도인 것이다. 홯

 

열편의 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역시 단편들을 읽는 재미란 서로 다른 빛깔의 맛있는 음식을 골라먹는 재미? 아마 그런것 같다. 온다리쿠를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입문서 같은 이 책이 나에게도 그녀의 다른책들을 빨리 읽어보라고 유혹을 하니 말이다. 이 책은 각 각의 단편들마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그림이 그려져 있다. 문 중앙에 무늬가 있는 듯 깨져 있는 형상이 있는 문도 있고 일반적인 문 형태로 나를 맞이하는 것도 있다. 물론 깨져 있는 문 같은 곳엔 고개만 디밀고 안을 살펴서 충분히 안전한지 알아보고 들어가고 싶긴 하지만 늘 그 무서움이 나를 그 곳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닫힌 문이 아닌 조금 열려진 문에 들어서고 싶은 사람이 있는 한 그녀의 이야기들은 끝이 없으리라. 과연 내가 들어설 이 방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혼자 들어갈 용기가 안나는데 같이 갈 사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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