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악'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면 좋을까. 세상에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고 하는데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끔찍하고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 즐기면서 행하는 것을 볼때 정말 '악마'같다고 표현할 것이다. 악마, 악이란 것은 '선'이란 말처럼 인간과 따로 뗄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이 책에서 안드레아의 존재가 '악'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중엔 그렇게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저지르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오히려 난 안드레아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안드레아와 발테르의 만남은 알콜 중독증을 치료하는 곳에서 만나게 되지만 분명 발테르가 훗날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안드레아는 발테르를 이끌어 주는 존재로 이레네 수녀를 만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에 악의 존재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다. 그 자신은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한채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 나름으로 그에게는 삶의 아픔을 외면하는 한 방법이었을테니 다른 의미의 안식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은 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때는 유쾌한 모습을 보이건만 집안에서는 식사할때조차 접시를 보면서 말없이 식사를 할뿐이다. 어린시절의 발테르는 그런 아버지를 경멸, 증오의 시선으로 보게 되고 자신조차 집안의 배경음의 한부분이 되어 간다. "불"에는 발테르의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랑하여 결혼하고 자신을 낳았음에도 전혀 행복하지 않은 이 세사람은 집안에서 그저 다른 형태의 물건인양 그런 존재로 시간을 보낼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미쳐버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지 않은가. 이런 어린시절이 로마에서 작가생활을 하는데 밑거름이 되지만 자신이 만든 책 "불꽃의 인생"이라는 제목과 다르게 겪고 싶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낸 것은 틀림없으리라 생각된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안드레아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을 죽여봤다는 것인 것 같다. 전쟁에 참여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죽어간 사람에 대해 애통해하지는 않고 자기 자랑에만 여념없는 할아버지의 모습,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닌 그런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잔뜩 주눅든 인생을 살게 하는 아버지. 전쟁이 다시 일어나 발테르가 참전하는 일은 없지만 현재 침묵속에 이루어지는 전쟁을 겪으면서 폭발하지 않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전쟁이 끝났으나 그 곳의 기억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이 기억들은 미래를 결정지을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안드레아도 손에서 놓지 못했던 10년이 넘는 용병생활로 인해 점점 피폐해져 갔으니까.

 

엄마와 난 한편이라 생각했건만 발테르가 반항을 했을때 아버지와 공범자가 되어 버리는 엄마의 모습에 더이상 착한 아들로 살고 싶지 않다. 여전히 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부모의 모습일텐데 아직은 발테르가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해 엄마의 마지막 가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서로가 용서하지 못한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 버린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기 위해 로마에 찾아온 엄마를 매몰차게 보내는 그를 안아주고 돌아서는 엄마는 그 때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아들에 대한 바램을 맘속에 묻어버렸을게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침묵으로 가족을 대하고 아들과 직접적인 대화가 없이 개를 부르듯이 "그애"라며 엄마와 대화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부정을 전혀 찾아 볼 수 없건만 미래 자신도 그렇게 닮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그 상실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부모와 똑같이 삶고 있는 내 모습은 먼길을 떠났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듯 허탈감에 빠진다. 행복따윈 존재하지도 않는 이 곳에서 엄마가 죽고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경멸과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아버지였건만 아기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엔 그 어떤 증오심도 보일 수가 없게 된다. 세월은 그렇게 하나씩 허물어뜨려 용서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린시절의 기억때문에 평생을 짓눌리며 살아온 발테르가 이젠 마음의 안정을 얻었기를 희망해 본다. 종교에 의해 안식을 찾긴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고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있어 훌훌 털어버릴수 있었을 것이다. 이젠 조금은 행복해져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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