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빙화
이선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황녀라는 신분이 우러러 보이고 감히 마주 볼 수도 없는 위치일텐데 그 자리 또한 늘 마음 편한 곳이 아님을 누가 알아줄까. 망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신분은 백성들과 고난을 함께 하고 그들앞에 조국의 어머니로 우뚝서서 위엄을 보여야 하기에 더 힘든 자리다.

 

드라마를 통해 친숙하게 다가오는 대조영, 이해고, 걸사비우 등의 존재와 함께 고구려의 마지막 황녀 학아의 존재 또한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온몸으로 황녀로서의 위엄을 드러내 보여야 하는 위치라 가녀리고 정이 많은 마음을 숨긴채 냉철하고 단단한 모습을 보이는 학아는 그녀의 곁에 그림자처럼 따르는 무사 '무'에게만은 황녀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그저 평범한 여인네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렇기에 당에 볼모로 갈때 대조영이 '무'의 목숨과 안전을 위해서 놓아두고 혼자 가라고 했을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유일하게 본 '무'없이 홀로 가야할 그 길이 인생에 있어서 그녀 자체는 없는것으로 생각되는 모진 고통을 안겨주었다.

 

황녀라면 한없이 자애로와도 될텐데 왜 그렇게 백성들 앞에 등불이 되고 싶어 자신의 몸을 불살라야 했을까. 한없이 약한 내면의 여성스러움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건만 '무'에게 늘 냉정한 모습으로 명령을 내리고 치졸한 감정싸움까지 하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대조영'이라는 드라마에서는 대조영이 주인공이다. 지금 여기서는 황녀 학아가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시종일관 계책을 내놓고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며 정적들을 하나씩 처리해가는 모습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황녀이기에 그러해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남자들의 세계에서 순종적으로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단단하게 휘지 않고 딱 부러지는 성정을 보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미령과 대조영의 둘째 아들 무예의 사이를 갈라놓는 학아, 무예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미령에게도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란 이것이 과연 여인네의 마음이란 건가. 황녀로써 당나라에 볼모로 자진해서 떠나면서도 늘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학아. 아주 옛날 마지막 황녀로 대조영에게 의탁하여 길러지고 한 병사가 보덕왕의 친족인 고대문 장군이 신라 자객에게 암살되고 그 딸인 미령을 대조영에게 맡겼을때 미령과 학아는 아이적부터 함께 자랐다. 세월이 가며 황녀란 신분은 아버지로 대하고 싶은 대조영과 거리를 만들고 자신에게는 늘 냉정한 대조영이 미령에게만은 자애롭게 대하는 것을 보면서 속울음을 참으며 버텨야 했다. 그러나 대조영이 생각한 계책임에도 그녀의 삶은 오로지 그녀가 선택한 삶이었다. 황녀로써의 강인함을 보이는 것에 이유를 뒤바뀐 자신의 운명때문에 그랬다면 그 이유는 공감하기 힘들다. 백성들의 바램을 보고 황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야기가 중간에 끊겨버리는 느낌이 있지만 그녀가 선택한 황녀로서의 삶도 지켜내고 사랑하는 '무'와도 함께 하였기에 그리 서러운 인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완벽한 황녀이고 싶었다면 무사 '무'의 사랑도 받아들이면 안되었을 것을 두 가지 다 가진 그녀는 분명 선택한 삶이기에 그리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쉬운게 있다면 자신을 짓눌러온 신분이란 것이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의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나 너무 그런면으로 치중하여 표현하여 사랑에 손을 뻗는 학아의 모습이 슬픈 사랑이야기로 그리 가슴을 크게 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 마음이 말라버렸거나 자신의 이기심에 주위에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에 그녀의 사랑이 삶이 슬프게 와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망국의 설움속에서 마지막 황녀의 모습은 정말 백성들의 등불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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