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이르는 다리
카린 D. 케다 지음, 박상덕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정말 용서에 이르는 다리가 있을까. 나 스스로가 놓아야할 다리겠지만 이곳을 지나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치는 것이 '분노'의 다리다. 정확한 수순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놓아버리면 되겠지만 이것이 독이 되어 나의 마음을 갉아먹기에 방치할 수 없다. 용서와 분노는 가를 수 없는 존재여서 사는 것이 다 그렇다고 해도 놓아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알면서도 안되는 용서. 지금도 난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욕하고 할퀴고 있다. 이것은 부메랑과 같아서 내가 한번 때리면 나를 때리고 내가 죽이면 나를 죽이는 비수가 되어 박혀버린다.

종교적인 냄새가 짙게 드러나는 이런 장르의 책을 반가워하지 않지만 현대인의 '화'를 다스리고 마음을 풀어버리는 '용서'는 필요한 일이기에 굳이 종교에 귀의하지 않더라도 공감하는 글들을 읽으면서 내 마음도 다스려지길 바란다. 파란 하늘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다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도 한발짝 내딛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가 자문해 보면 발을 뗄수가 없다. 뺨을 맞았을때 다른쪽 뺨도 내어주는 행동을 나는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은 기억도 못할 일을 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꼽씹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못났다. 나의 미워하는 감정을 어느 순간 풀어냈을때 상대방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뭘 그런것을 가지고 그러냐는 반응을 보일때 참으로 슬퍼진다. "난 이정도의 인간인가" 하는 자괴감을 가지게 되니 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하고 싶을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두 손을 부르르 떨고 진정되지 않은 가슴이 두방망이질 칠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정말 난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은데 용서가 되지 않아 기억의 한편을 뜯어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희노애락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기에 분노를 뿜어낼 수 있는 문을 언제나 열어둘 필요가 있다. 다정한 목소리로 용서에 이르는 다리에 이르게 이끌어주지만 아직 내안에 잠재되어 있는 기억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책 한권으로 떨쳐버릴 것들이 아닌 것이다. 뼈에 새겨진 기억들이 누가 죽은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생각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에 쉽사리 놓아버릴 수가 없다. 용서하면 마음에서 놓여나면 편안해진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웃고 있지만 내 영혼은 웃지 않고 있음을 왜 모르겠는가. 이렇게 내가 성장하고 마음이 깊어진다는 것을 위안삼아 기억이 점점 퇴색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나 용서란 것을 하지 않아도 용서에 이르는 다리에 나도 모르게 한발 내딛고 있지 않을까. 비겁하다고? 내 기억이지만 내맘대로 되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이런 장르의 책들을 읽으며 심신을 단련하다 보면 그럴때가 오지 않을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누군가 용서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 말에도 귀를 기울여 보련다.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 이것이 인생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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