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내가 하늘을 언제 쳐다보았나 싶다. 낮에 하늘 볼 여유도 없이 책만 파고들고 살았는데 석양은 말해 무엇할까. 늘 볼 수 있음에도 외면해와서일까 붉게 물든 것 같은 책표지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단편들로 이루어져 제목이 4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1년을 표현해 놓았다. 그렇다고 계절별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도쿄타워가 지어질 무렵 그 시절의 가난했지만 이웃간의 정이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따로 떨어져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때쯤 스즈키 자동차 수리점의 아들 잇페이가 다른 이야기의 문구점에 나타나면서 "아~이웃들의 이야기구나" 알게 된다.  

아이들이 보이면 누구네 아이네집 아이라 이름도 알아서 보호 해 줄 수 있던 시절, 다 고만고만 살지만 아이 넷을 혼자 키우는 마치코에게 부서진 두부나마 아주 싸게 팔고 부서진 두부가 없을때 일부러 두부를 부셔서 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가슴 찡한 감동을 준다. 이웃간에 정이 있어 가난했지만 희망이 있던 시절이었다. 코카콜라가 처음 나왔던 시절 꼭 메밀국수 국물 같이 생긴 것에 아직은 미각이 익숙치 않고 깡통에 들어있는 쥬스조차 신기하던 시절, 삶은 가면 갈수록 윤택해지고 스즈키 자동차 수리집에 중고 텔레비전이라도 들어왔을때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보는 꼭 우리네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이라도 하면 이웃간에 서로 나눠먹던 그 정 많던 시절말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내 어린시절의 모습이지만.  

4월, 5월 이렇게 읽어가다 보니 마지막쯤엔 1년이 지나있어야 하는데 왠일인지 스즈키 자동차 수리점에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하던날 그 집앞에서 치고 받고 싸웠던 대학생 미츠오와 쿠마카와는 많이 늙어있었다. 48년이 지나있다니 정말 순식간에 세월이 지나가버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사랑하는 여인 삿짱을 두고 성공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쿠마카와가 못내 야속하고 괘씸하여 치고 받고 싸웠는데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는지 전시회에 미츠오를 불렀으나 썩 내키지가 않는다. 손자인 타이요가 함께 가고 싶다는 말에 가는길에 자신이 살았던 젊은 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데 많이 변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가자니 모두 기억이 난다.  

문구점을 했던 자리에는 고급주택이 세워져 있었는데 문패에 '후루유키'라고 쓰여있었다. 어렴풋하지만 문구점 아저씨가 거둬 키웠던 그 아이가 사는 곳일 것이다. 에로소설과 아동소설을 집필했던 그 문구점 아저씨가 아이를 거둬 키우다니 참으로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스즈키 자동차 수리집은 그대로다. 중견 자동차 기업이 된 스즈키 오토의 시작이었던 곳이기에 '스즈키 오토 기념관'으로 그대로 남겨 두었다. 화려한 건물들속에 있어 어울리지 않지만 그곳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낯익은 장소 하나쯤 남겨두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지난간 시대의 건물을 복원해 놓은 곳을 보려면 드라마 촬영세트장으로 가야만 하는 지금의 우리들에겐 그저 옛시절이 이랬었다며 눈으로 보고 사진이나 찰칵 찍어대며 기억할 뿐이지만 함께 성장하고 세월을 보낸 이들에겐 세트장처럼 꾸며놓은 공간들이 얼마나 야속할까. 세월들이 사라진 느낌이겠지.  

달마다 하나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글들을 읽다보니 꼭 미츠오의 옛기억을 더듬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가 더듬어 가는 기억들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사람들의 생활이었으니까. 그래서인가 나도 함께 세월을 보내 늙어버린 느낌이다. 미츠오가 대학생이던 그 옛날, 삿짱이 배달다니며 일했던 식당에서 먹던 김이 모락모락 나던 국수, 딱 그맛을 간직한 국수를 지금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않았을까. 옛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이제는 등굽은 노인이 되었어도 마음만은 아직 그곳에 있기에 맛있는 국수를 만들어주는 할머니 삿짱과 함께 사는 쿠마카와가 부러운 미츠오의 손자 타이요의 말에 그래도 "낡은 아파트에서 배가 고파 견딜 수 없게 된 젊은이가 아니면 그 맛을 알 수 없다"고 호기롭게 말함으로써 그 때 그 추억을 다시 되새기며 인생이 참 살만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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