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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들고 달리기
어거스텐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어거스텐에게 뭐라 이야기 해야할까? "안되었구나. 어쩌겠니.." 아니면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한다?" 평범한 집안이 아닌 정신과 상담을 받는 늘 서로 죽일듯이 할퀴는 부모님을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식기세척기에 머리를 부딪치고 피를 흘리는 아버지의 시체놀이라니. 험한 욕설에 정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만든다. 나도 그렇게 단란한 가정속에 자라지 않아 그 마음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거스텐이 가엾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에 대응하는 모습은 나와 전혀 다르다. 어쩌면 내가 자란 곳의 생활환경이 부모에게 의존하며 자라게 되는 한국적인 공간이어서? 아마 아닐 것이다. 난 불행하다는 자조가 늘 나를 웅크리게 만들었으니까.
부모님의 이혼, 자신이 생각하는 화려한 의사의 집이 아닌 지저분한 개털이 날리는 핀치 박사의 집에서 기거하게 될 줄이야. 혼자서 낯선 공간에 살게 되었으니 여기에 대해서는 "안되었네..어쩌겠니"라고 위로 해 줄 수 있을 듯 한데 하지만 이마저도 자신의 세계를 잘 꾸려나가는 어거스텐의 모습은 과히 대견스럽다. 그런데 핀치 박사는 정말 어거스텐의 의심대로 의사가 맞긴 한것일까. 학교가 가기 싫다고 하니 자살소동을 일으키게 약을 주다니. 세상에 이건 말도 안된다. 학교는 반드시 가야한다는 규율에 대해 한소리 늘어놓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약을 주는 의사가 세상에 어딨는가? 정상적이지 않은 의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의 부재로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지만 어거스텐의 주위 사람들 또한 평범하지 않기에 오히려 이때문에 정신적인 성숙을 더 빨리 겪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게이라는 정체성을 깨닫고 닐과 사랑을 하는 내용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의 경계선을 넘은 듯 약간 당황스럽다. 또한 그것을 용인하는 핀치 박사.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아직은 이런 이야기를 그냥 받아들일 수 없으니. 책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이상하다. 그러나 자유분방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모습. 어쩌면 어거스텐에겐 이 또한 낯설지 않은 모습일테지. 엄마가 너무 좋은데 밖으로 외출하는 엄마를 보며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는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젠 핀치 박사 집에서 겪게 되는 일은 평범하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지만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낯설기는 마찬가지. 자유롭게 사는 지금도 예전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리 불편하진 않다.
바라보는 시각은 기준이 언제나 '나'일 것이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사나. 의사도 아냐. 게이라니. 지저분한 곳에서 어찌 사나. 이 모든 것은 다 '나'의 기준인 내가 바라보는 시각인 것이다. 어거스텐이 바라보는 세상은 나와 전혀 다르다. 그 속에서 기쁨을 찾고 점차 성장해 가는 것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난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래도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어거스텐의 모습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늘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책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움에 조금은 유쾌한 생각도 드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