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개
양쯔쥔 지음, 이성희 옮김 / 황금여우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두껍다. '사자개'가 어떤 동물일까 생각하기 전에 이 책을 보고 먼저 받은 첫인상은 그러했다. 두께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쉽게 넘어가는 책장들. 지금은 생소한 이름이 되어버린 사자개의 존재로인해 마음이 아파온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놓는데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자개. 정말 전생에 아버지는 사자개였을까. 깡르썬거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모습은 영웅의 모습을 넘어 사자개에 대한 가슴 뭉클한 애정을 보여준다. 대대로 샹아마와 시제구의 사람들은 원수다. 그 속에 인간들과 함께 하는 사자개 또한 그 사람들속에서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말못하는 짐승이라 하기엔 인간의 언어와 마음을 너무 잘 헤아린다. 어쩌면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보다 더 우직하고 진실된 모습을 한 사자개. 주인에 대한 복종에 마음을 담았기에 예사 동물로만 생각되지 않아 강력한 힘마저 느끼게 된다. 

화자가 풀어내는 사자개의 삶. 주인의 명령으로 샹아마와 시제구 아이들의 싸움에 나서지만 그들사이의 규칙도 있다. 깡르썬거를 구한 아버지를 적으로 간주하는 나르. 자신을 죽일뻔한 나르에게 손길을 뻗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르에게 생소하지만 그 정성에 적으로서의 마음은 버린지 오래다. 두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시제구의 영지견들이나 사자개들에게 분명 배반적인 행동일 것이다. 깡르썬거에 대한 마음이 깊어 샹아마와 시제구 아이들의 싸움에서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마니석 무더기를 들이받고 죽으려고 하는 모습은 정말 가슴 뭉클하게 한다. 

동물을 만지지 못하는 나는 사자개가 옆에 있어 내게 충직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무서움에 아마 곁에 두기도 꺼려질 것이다. 마음을 담아 내게 호소해 와도 그 마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그릇이 작은 나는 외면하겠지. 아마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마저 가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책속에서 묘사된 사자개라면 평생 가족처럼 곁에 두고 싶기도 하다. 천국의 열매라고 생각하는 땅콩을 샹아마의 아이들이 먹고 땅콩을 준 아버지를 따라 시제구에 들어온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를 따라온 아이들이 곤경에 처하는 것을 보지 못해 목숨까지 내던졌던 아버지로 인해 사자개 깡르썬거는 물론 샹아마의 아이들의 손목 또한 구하게 된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에게는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물론 주인과 함께 하고자 하는 충직한 사자개 깡르썬거도 여기서는 사자개의 왕으로서 당당한 면모를 보이게 되지만. 샹아마와 시제구의 오랜 숙원은 모르겠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손목을 자르다니. 정당하게 싸움을 해서 패배한 결과이긴 하지만 너무도 끔찍한 일이기에 손목이 잘려나갈 그 시점에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사자개들의 삶과 사람들의 삶이 교차되는 가운데 사람들속에 살아가면서 역사에 거스를수 없어 티베트의 모든 것을 파괴했던 문화대혁명을 맞은 사자개들은 그들의 야성을 빼앗기게 되어 슬픈 모습으로 다가온다. 초원을 뛰어다니는 사자개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건만 그저 인간 옆에 있기에도 허락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버지가 임종시 눈앞에 그린것은 아마도 초원을 활개치고 다니는 깡르썬거의 모습이었을테다. "아오떠지, 아오떠지"를 외치는 빠어추쭈의 목소리에 이어 "마하커라뻔썬바오, 마하커라뻔썬바오"라고 외치며 달려가는 샹아마의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아오떠지"만 외치는 빠어추쭈가 밉지만 그들의 역사속에 나는 함께하지 않았기에 그저 '용서하며 살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담담히 바라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