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로망은 어디인가"라며 교노가 소리치고 이것을 신호로 가까운 은행에 총을 들고 난입하는 나루세, 교노, 구온, 유키코를 만나면 신고해야할까, 묵인해야할까 잠시 고민 해 본다. 묵인하고 싶은데 어쩌나. 가만히 앉아 남의 돈으로 제 주머니 불리는 은행이 제 구실을 못하니 응징하러 가는 이들 네사람에게 동조하고 싶은 마음이라니 나의 마음속에도 작은 악마가 속삭이고 있나 보다. "사회는 썩었어. 대출로 지구는 돌아간다고. 인간처럼 잔인한 종족도 없어" 라며 말하는 구온에게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시원스럽게 사회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않은 이들은 법을 어기기는 하지만 우리 시대의 '홍길동'같이 느껴진다. 뭐 그렇다고 훔친 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은행을 터는 것이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 될 수 있다니 놀랍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나는 목격자가 되어 신고도 못하고 이들과 함께 하는 신세가 된다.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하며 망을 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지.  

은행강도가 돈을 훔치고 달아나다가 현금수송차를 덮친 '잭'을 만날 확율은 얼마나 될까?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엽기적인 그녀'의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놀이공원 왔다가 탈영병 만날 확율"에 대해서 말이다. 두 사건의 확율이 비슷하지 않을까. 30대 여자가 좋은 남자 만날 확율은 원자폭탄에 맞아 죽을 확율이라지 아마. 여튼 뛰는자 위에 날아다니는 자 있다고 훔친 돈을 빼앗기다니. 내 손에서 돈이 스르르 빠져나간 것처럼 속상해진다. 한가지를 알게 되면 열가지를 시뮬레이션 하는 나루세, 한가지를 말하면 그 한가지마저 말 못하게 막는 달변가 교노, 체내에 시계를 갖고 사는 유키코, 소매치기의 달인 구온 이들이 뭉치면 못할 것이 없겠다. 일부러 초를 헤아리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지금 몇 초가 남았는지 흘러갔는지 알게 되는 유키코는 정말 신기하다. 이 좋은 기능을 왜 이런 곳에? 잠시 생각 해 보았다. 늘 초를 헤아리며 사는 인생이 불행할까 생각하기 이전에 좋은 능력을 썩게 하는 거 같아 안타까우니 난 이 멤버들과 함께 할 자격이 없는가 보다. 속물덩어리 같으니.  

현금수송차를 턴 간자키에게 돈을 돌려 받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게 들 무렵. 구온이 훔쳐온 지갑을 보인다. 이들의 돈을 가지고 간 녀석중 하나다. 하야시의 면허증을 확보하여 사건을 풀어나간다. 근데 어랏? 이때부터 내용이 점점 추리소설이 되어간다. 대체 이 책은 장르가 뭐야? 유키코의 아들 신이치의 아버지가 등장하고 점점 이야기가 복잡 해진다. 신이치가 왕따 당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교노와 구온이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멋진 행동까지. 하야시를 죽인 간자키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 또한 나의 허를 찌르니 독자까지 속여먹는 그들의 재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간 거짓말 탐지기 나루세가 나에게 물을까? "지금까지 목격한 것을 말하지 않겠습니까?" "네네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헉. 아마 이렇게 들킬 것이다. 이들의 유쾌한 행위를 어디든 떠들고 싶은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말하지 말라는게 정녕 고문일 것이다. 정의가 뭐냐고? 삐딱하게 돌아가는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게 정의라구.  

신이치의 아버지 지미치의 인간됨됨이에 크게 실망하게 되지만 이 사건을 풀게 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니까 그냥 넘어가야겠다. 모든 사건을 알아차리고 진두지휘하는 나루세가 대단할 뿐이다. 모르는게 없을 것 같은데 나도 살아가면서 가까이에 이렇게 박식한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나루세, 교노, 유키코, 구온과 함께 하는 이들이 부럽다. "로망은 어디인가" 소리치며 또 어느 은행을 털고 있을 것인가. 그들의 유쾌한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어진다. "나의 로망은 어디일까" 잠시 아주 잠시 고민 해 본다. 이들이 만나게 된 사건 또한 평범하지 않다. 궁금하다면 이 책을 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이 재밌는게 사실입니까?" "네네 맞습니다." "당신은 진실을 말하고 있군요" 나루세에게 진실임을 인정받는다. 정말 즐겁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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