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요술 모자 - 미세기 그림자 극장
나탈리 디에테를레 글.그림, 박상은 옮김 / 미세기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아마 누구나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렇듯 나도 '청개구리 기질'을 갖고 있다. 어린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할때 바지 앞에 매달아 놓은 닳고 떨어진 주머니에 뭘 주섬주섬 넣으시나 궁금하고 내 얼굴만한 항아리에 숨겨두신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적이 많다. 지금은 이런 기억조차 아련한 추억속의 일이라 외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같이 떠오르는 기억중 하나인데 '할머니의 요술 모자'를 보니 생전에 외할머니가 소중히 여기시며 지니고 계시던 꿀단지가 요술모자의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쌈짓돈을 꺼내시어 손자, 손녀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 주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므로 요술 단지인 것이다. "할머니 과자..." 이러면 어디선가 펑~하고 나타나 내 손에 쥐어주시던 맛난 사탕, 맛있게 먹은 기억은 나지만 할머니의 손때 묻은 그 물건들은 만진적이 없는 것 같다.

책속을 들여다 보니 수요일마다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나'. 할머니는 손자가 왔는데 뭐가 그리 급하신지 한시간 동안 급히 장을 보러 가신단다. 단 "이 모자에는 절대 손대면 안된다."는 말씀을 남기고. 꼭 "요술 모자를 써라"는 말같이 유혹적으로 들린다. 나라면 어땠을까? 썼을까 안썼을까. 아마 소심한 마음에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그냥 그 주위만 배회하며 돌아왔을 것 같다. 아니 지금의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의 마음이니 참지 못하던 어린시절에는 분명 모자를 쓰고 황당하고 신기한 일들을 겪으면서 진짬을 뻘뻘 흘렸을 것이다. '요술 모자'라는 소재로 만들 이야기는 무궁무진 할 것이다. 아이들을 앞에 앉혀 두고 책장속에 있는 그림판을 세우며 구연동화를 들려주듯이 맛깔스럽게 재미나게 읽어 주면 요술모자의 속편들이 계속해서 탄생할 수 있으리라.  

한번은 그냥 쭉 내용을 보았고 그 다음에는 꼼꼼히 설명을 읽었으며 마지막으로 그림자 극장을 재현해 보았다. 책속에 있는 그림들을 세우며 내가 잠시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유쾌해졌다. 내가 이렇듯 좋은데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신기하고 멋질 것인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요술모자를 쓴 잠깐의 시간동안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수습불가능한 일이 벌어지는데 너무 쉽게 사건이 마무리 되어 섭섭하기까지 하다. 이럴 땐 할머니가 짠~하고 나타나야 하는게 아닐까. 지하실에서 불이 나고 욕실에선 물이 흘러넘치고 작은 꼬마가 걸레를 들고 수습하기엔 엄청나서 금세라도 집이 떠내려 갈 것 같은데 이리저리 막아보고자 종종걸음 하는 것이 귀엽기까지 하다. 너무 짓궂다고?   

아마 할머니는 알고 계시겠지. 손자가 요술모자를 썼다는 것을.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손자를 위해 준비한 이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변함없이 손자를 배웅하고 맞이하는 할머니. 아마 할머니도 가끔 삶이 심심해질때 요술모자를 쓰고 신나는 모험을 즐기시지 않을까. 단 주의해야할 점은 "내가 요술모자를 썼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너무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다 현실을 잊으면 곤란하다. 언제 마법이 풀릴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이 책을 읽으니 나도 갑자기 모자가 쓰고 싶어진다. 요술모자라면 좋겠지만. 모자를 쓰고 편안한 옷차림을 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지는데 이것도 혹시 요술 모자? 그럼 신나는 모험을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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