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 이오지마 총지휘관 栗林忠道
가케하시 쿠미코 지음, 신은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유난히 수학이나 지리에 약한 나로서는 '이오지마'란 곳이 어디쯤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도쿄에서 남쪽으로 1,250㎞ 떨어져 있는 곳. "2차대전 중 가장 격렬했던 이오지마 전투의 실상?" 아~우리나라와 무관하지 않구나. 머리를 친다. 눈은 책의 활자를 쫓고 있으나 이미 마음은 우리 나라의 산천 어딘가를 헤매인다. 만약 쿠리바야시 장군이 이오지마에서 전쟁을 오래 끌지 않았다면...만약 이오지마 전투가 빨리 끝났다면..만약 쿠리바야시 같은 사람이 우리 나라에도 있었더라면....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약이라고 이름 붙여진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괴롭힌다.

쿠리바야시 장군의 가족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장군의 모습과 편지들. 한 나라의 장군이지만 그 곳에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의 모습이 있었다. 전쟁의 이야기는 접어두고 부엌의 바람이 드는 틈새를 고치지 못했음을 걱정하고 자식들에게 아내를 부탁하는 모습은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곳에서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부하들이 전쟁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마음 아파하고 물이 없는 섬에서 부하들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지낸 그의 모습은 그래서 참으로 인간적이다. 

전쟁을 겪고 살아온 사람이 책을 냈더라면 더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주변인들을 방문하여 쿠리바야시의 자취를 더듬는다. 그가 보낸 편지글이 주를 이루고 가끔 "아버지의 깃발"의 인용문도 보인다. 아버지의 깃발이 미국인에 의해 쓰여졌다고 하여 조금 다르게 자국민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책은 어떨까 기대했었는데 역시 흔적을 찾아다니며 쓴 글이여서 이오지마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고 전쟁의 참상마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유황가스가 올라오는 지하참호를 파고 게릴라전을 펴는 그들의 실상이 눈에 보인다.  

시원한 물을 실컷 마시고 죽고 싶다는 절규. 전력의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두 나라의 전쟁은 이미 결론이 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쿄에 있는 자국민을 지킨다는 사명 아래 죽어야 할 자리에 서 있으며 얼마나 오래 버텨야 하는 길만 남은 곳에서 고뇌하는 모습 또한 그의 모습일 것이다. 전쟁의 승자이든 패자이든 전쟁은 어느 곳에서도 벌어지면 안된다. 지금이야 전쟁이 벌어진다면 앉은 자리에서 죽겠지만 그래도 사람 목숨이 불쌍하지 않은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 책을 보자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했지만 인간적이고 고뇌하는 모습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도 시대를 잘못 만나 희생된 한 사람으로 느껴지니까. 국력차이를 느끼며 전쟁을 반대했지만 군인의 신분으로 최전선에 나가 싸우다 죽는 길만 남았기에 가족을 생각하며 도쿄를 지켜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리라. 내 나라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기에 너무나 슬프다. 

대군영은 그가 부하들이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가슴 아파 그 마음을 적은 "슬프다"라는 말이 약해빠진 말이라 하여 인정하지 않았지만 생업에 종사하다 전쟁에 끌려온 한명 한명의 목숨은 소중하기에 원래 죽어야 할 생명이란 없기에 슬프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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