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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의 비밀일기
앨런 스트래튼 지음, 이장미 그림, 박슬라 옮김 / 한길사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질풍노도의 시기, 주변인,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 청소년기에 있는 십대 아이들에게 해당하는 말들이다. 요즘은 사춘기가 빨리 온다는데 우리 나이도 가끔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면 "너 사춘기냐?"는 우스개 소리를 듣는다. 누구나에게 사춘기가 온다고 하여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두는 부모님들이 많은데 레슬리를 보니 이 또한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없는 반항이 아닌 것이다. 부모님의 이혼, 아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고 새로 이사간 곳에서 적응해야 하는 레슬리에겐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내팽개졌다는 생각은 예상치 못한 출구로 감정이 분출되고 소위 말해 킹카라고 하는 '제이슨'의 등장은 이른바 레슬리에겐 탈출구였다.
외모지상주의라고 매스컴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이쁘고 잘 생긴 사람을 보면 눈길이 머문다. 부자에다 잘생기고 매너 좋은 제이슨의 존재는 레슬리에게 너무도 완벽한 남자친구인 셈. 핑크빛 사랑을 꿈꾸고 자신을 쳐다보는 친구들에게 어깨가 으쓱거리는 느낌을 가져보고 싶은 작은 꿈이 왜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인지. 그래 어쩌면 완벽한 조건의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안했을 것이다. 꿈 속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운명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큰 행운같잖아. 아마 내가 시기해서 그럴지도. 그래서 오로지 나의 질투이기만 바랬었는데 그러나 난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내려 놓고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레슬리에게 가해진 폭력은 꼭 내가 겪는 듯 두렵고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성'이라고 하면 쉬쉬하면서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나로서도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폭력인지 명확히 구분짓지 못한다.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숨기고 덮어둬야 하는 여자에겐 이 또한 자신을 두번 죽이는 것이다. "네가 처신을 잘못했어, 그러게 밤늦게 다니지 말랬지?"의 말이 가슴속에 박혀서 사라지지 않고 평생 그림자처럼 날 따라다니게 된다. 겪어 보지 않은 네가 하는 말은 가식이라고 이야기 하면 할말은 없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는 냉정한 시선속에서 피해자임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은 몇 안되니까. 그래서 레슬리의 행동은 '죄값을 치르게 한다'는 전제를 떠나서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 햇빛이 드는 밝은 세상으로 걸어나오려는 작은 몸부림이므로 슬프고 마음이 아프지만 그녀의 걸음걸이에 내 작은 힘이나마 실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이 잘못 한거야"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되자. 등을 돌리고 적이 되거나 방관하지 않는 케이티처럼 아무말 없이 레슬리를 꼭 안아줄 수 있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많아질때 세상이 참 밝아질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주제를 전달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사건들이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낸 듯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는 극도의 포악성까지 드러내는 바 조금은 인위적인 느낌을 받는 책이다. 영어시간에 15분 쓰게 된 일기장에 쓰여진 레슬리의 심리묘사로 그녀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서 끔찍한 상황을 함께 겪어 낸 것 같아 책을 덮고 나서도 아직도 가슴이 불안하다. 극단적인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전달되는 충분히 받았지만 실제로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