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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보내고
권현옥 지음 / 쌤앤파커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집에 커다란 박스의 나만의 공간이 있다. 그 곳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아주 어릴때부터 모아둔 편지들이 모여있다. 누렇고 퀴퀴한 곰팡내마저 나지만 가끔 박스를 열어볼때면 아련히 나의 기억은 추억속을 헤매이고 있었다. 멋모르고 철모르던 시절의 내 젊음이 담겨있으니 나의 보물인 셈이다. 연애할때 받은 편지도 한가득인데 아직 남편은 모른다. 혹 열어보면 "왜 열어봤냐"고 소리쳐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나는 그에게 첫사랑이지만 나는 아니므로 미안하니까. 버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나의 세월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아직 간직하고 있다.
편지박스에는 군에서 보낸 편지들도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 위문편지로 보내서 받은 답장도 있고 20살 대학입학후 정 들었던 친구들이 군에 가면서 "꼭 편지 보내라"라고 이야기 하면 "알았다. 꼬박꼬박 보낼께" 대답을 했는데 몇 통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꼬박꼬박 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네들은 몇 년을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며 사람냄새가 그리웠을텐데 나의 세월의 흐름은 너무도 빠르기에 젊음을 불태우느라 바빠 그들을 잊고 살았나보다.
남동생을 군에 보내면서 자식일에 냉정하기만 한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그때 공휴일이라 쉬는 날임에도 나는 배웅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동생의 전화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난 자리가 그렇게 클 줄이야. 막내라 어리게만 보았는데 어느새 나보다 키다 더 자라고 듬직한 장정이 되어있었나. 군대에 간다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권현옥님의 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열달 배아파 낳은 아이를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란게 살을 도려내는듯 아픈가 보다. 동생의 옷을 보낸 박스를 보며 눈물을 찍어내는 어머니의 모습은 내 마음마저도 아프고 가슴 뭉클했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 군대에 있는 아들과 통화하기전 먼저 하는 당부의 말 "지금부터 제가 아드님을 바꿔 드릴 텐데요. 아이가 마음 약해질 수 있으니 절대로 우시면 안됩니다. 아시겠죠?" 이 대목에서 왜 나도 눈물이 나는건지.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집 떠나서 강제된 규범속에 얼마나 낯설어 할지 가족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느껴지기에 그랬을까. 슬펐다. 군대가 많이 편해졌다고 하지만 자유를 억압당하는 곳에서 세월이 얼마나 아깝고 서러울것인가. 이 땅의 남아라면 꼭 가야하는 곳이니 나는 여자이기에 이런 마음을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앞에 나도 다시금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했다. 아들과 함께 날짜를 헤아리고 거리를 나서면 죄다 군인들만 눈에 들어오는 상황. 비록 먼 곳에서 서로를 그리워 하며 연애하듯이 시간을 보내며 애틋하겠지만 두 사람다 씩씩하게 잘 해내리라 생각된다. 이야기는 중간에 맺지만 아직도 그들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진행중이겠지. 나도 군인을 보면 이 분 생각이 날 것 같다. 오늘은 남편에게 군대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야겠다. 비록 함께 하지 못한 세월이지만 같이 추억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근데 그쪽으로는 가기도 싫어하는 상태는 아니겠지?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눈다고 하던데 괜히 아픈상처 건드리는 일이 되지 않았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