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표 이야기 -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정표.김순규 지음, 이유정 그림 / 파랑새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살고 싶어요"

정표가 마지막까지 참으며 하지 않은 말이 있다면 아마도 이 말이었을 것이다. 이 말을 내 뱉으면 희망이란 놈이 도망갈까 겁이 나서 불행이 나를 비켜가지 않을까 저어하여 내뱉지 못한 이 말을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을때 정표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살을 도려내는듯 가슴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 몸에서 낳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정표의 일기를 보면서 부모님의 절규를 보았고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게 된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한 아이의 소망을 보았다. 내가 쉽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감사해야 하는 것임을 나에게 가르쳐준 정표의 일기는 억지로 학교에서 시켜서 하는 일기가 아닌 영혼이 담긴 글들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종종 여주인공이 병에 걸리면 한번씩 등장하는 "백혈병", 애처로와 보이고 죽이지 말고 살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보았던 드라마들. 아름답게 포장된 주인공들과 달리 보이지 않은 곳에선 그저 드라마이길 바라며 병과 사투를 벌이며 이겨내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렸을때 나도 아프면 종종 엄마에게 짜증을 냈었다. "왜 낳았냐고, 오래 살기 싫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지금은 그저 미안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내가 한 말들을 다 잊었길 바라며 "부모님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애써 자위하며 모른척 하는 중이다. 이런 내게 정표는 왜 그랬냐고 그러면 안된다고 가슴을 치며 이야기한다. 어째 난 13세 정표보다 이리 못나기만 한 것인지. 부모님의 기념일에 이벤트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생신때 직접 상을 차려드려야 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못했었고 하나하나 누리게 해 주시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 해 본적은 한번도 없으니 겉만 컸지 속은 아이보다 나은 구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누구에게 충고듣는건 싫어하고 타인의 단점은 너무나 잘보는 이것이 잘난 것 하나 없는 나의 본모습일 것이다.  

주위에서 흔하게 걸리는 병을 보면 무슨 무슨 '암'이 많은 것 같다. 병상일기를 보니 엔젤 병동엔 왜그렇게 끊임없이 소아환아들이 오는지 어른들 보다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은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어진다. 몇년 자원봉사라는 것을 할 때 백혈병 소아환아들을 위해 봉사를 다니는 단체들과 함께 할 일이 몇번 있었는데 혈소판 헌혈을 하고 소아환아들을 위해 봉사하는 그들을 보며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 아이가 혈소판이 필요하다고 했을땐 아는 분(청각장애우)을 보내드렸으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움이 되질 못했었는데 우리나라의 법이 왜 그런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이었고 그 아이(미안한데 아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장이 썩어간다고 혈소판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집으로 정기적으로 "생명사랑"이라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서 오는 팸플릿이 있다. 자세히 읽지 않고 대충 보며 던져놓았던 나의 행동이 생각나 부끄러워진다. 살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과 꿈이 담긴 글들이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는지. 이젠 그 팸플릿을 볼때마다 정표가 생각날 것 같다. 무슨 무슨 약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왜그렇게 많은지. 골수를 기증 받았는데도 왜 정표와 나는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 없었는지 책을 읽는내내 끝으로 갈 수록 초조해졌다. 불행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빠르게 나를 덮쳐누르나 보다. 정표의 글뒤에 엄마의 글은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지금은 어찌 지내고 계시나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정표와 함께 있고픈 엄마의 마음이 담겨진 글이라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읽었다. 많은 이들이 정표이야기를 읽고 힘을 내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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